숭례문 수난사

  • 입력 2008년 2월 11일 03시 04분


■ 숭례문 수난사

1907년 日왕자 방문때 좌우 성벽 헐어내

2002년엔 홍예문 석재 일부 떨어져 나가

국보 1호 숭례문은 조선 초인 1398년 수도 한양에 도성을 쌓을 때 함께 세운 성문. 현존하는 성문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것으로, 간결하면서도 당당한 외관을 자랑한다.

숭례문과 국보 1호의 인연은 1934년 시작됐다. 당시 일제가 조선의 보물을 지정하면서 숭례문에 보물 1호의 번호를 부여했다. 이후 1962년 우리 정부가 국보 보물을 지정하면서 일제가 부여했던 번호를 그대로 따르면서 숭례문은 국보 1호가 되었다.

국보 1호 숭례문의 수난사는 16세기 말 임진왜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이끄는 왜군은 숭례문을 통해 한양으로 입성했다. 한양 도성의 정문을 왜군에 내주었다는 것은 숭례문과 조선의 치욕이었다.

국권을 사실상 상실한 20세기에 들어서자 숭례문의 수난은 더욱 심해졌다. 1907년 일본 왕자 요시히토(嘉仁)는 서울을 방문해 “일본의 황태자가 조선의 도성 정문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서 숭례문 좌우의 성벽을 무참히 헐어내고 도성 안으로 들어갔다.

2002년 8월엔 숭례문의 석재가 떨어져 나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석축 가운데에 위치한 홍예문(虹霓門·무지개 모양의 문) 상단부의 석재 일부가 오랜 세월과 풍화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진 것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와 서울시는 이듬해 초강력 에폭시 수지 접착제를 이용해 떨어진 석재를 원 위치에 다시 붙여 놓았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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