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제13회 고석규 비평문학상 수상자인 평론가 김예림(39) 씨. 섬세하고 진지한 비평 활동을 펼쳐 온 평론가다. 그가 첫 평론집인 ‘문학풍경, 문화환경’으로 주목받는 젊은 평론가들에게 주어지는 이 상을 받았다.
김 씨의 아버지는 문학과지성사 초대 대표를 지냈던 문학평론가 김병익(70) 씨다. 딸이 아버지의 길을 따라 걸어가는 셈이다.
“김병익 씨의 비평이 따뜻하면서도 새로운 것에 적극적인 데 대해 예림 씨의 평론은 문학적 주관이 뚜렷하며 문화 전반에 대해 광범위한 관심을 보인다”는 게 문단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예림 씨는 김병익 평론가의 딸로 거론되는 것을 꺼린다. 아버지와 함께 하는 인터뷰를 여러 곳에서 제안받았으나 한사코 고사할만큼 ‘평론가 김예림’으로만 평가받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요즘 미국과 한국에서 각광받는 타악 연주자 박윤(34) 씨도 그렇다.
“우리 집 거실에는 소파와 TV가 있는 게 아니라 타악기가 있었어요. 저는 마림바 밑에 들어가 놀고, 북을 치고 놀았어요. 아버지가 외국인들과 함께 집에서 연습하는 것을 항상 지켜보곤 했지요.”
박윤 씨는 한국 타악계의 대부 박동욱(73) 씨의 큰딸이다. 박동욱 씨는 1970, 80년대 국립교향악단과 KBS교향악단의 수석 팀파니스트로 활동하면서 한국 타악계의 발전을 이끌었다. 딸은 어릴 적부터 거실에서 타악기 레슨을 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리듬을 체득했다. 그의 회고.
“타악기를 전공한다고 하니까 아버지가 무척 반대하셨습니다. 그 무거운 타악기들을 어떻게 들고 다니느냐는 거죠. 조르고 또 졸라 아버지의 제자에게 타악기를 배웠습니다.”
박윤 씨는 미국의 명문인 커티스음악원을 졸업했고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등으로 주목받았다. 딸이 2006년 서울시향 협연으로 제임스 맥밀런의 마림바 협주곡 ‘베니, 베니, 엠마누엘’을 국내 초연했을 때 아버지는 악기 튜닝부터 운전기사까지 자청할 정도로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미술사 부문에도 같은 길을 가는 부녀들이 있다. 김리나(66) 전 홍익대 교수와 김영나(57) 서울대 교수도 부친의 전공을 이어받은 미술사학자. 두 딸의 아버지는 김재원(1909∼1990) 초대 국립박물관장으로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을 거치면서 척박했던 시절 우리 문화재와 박물관을 연구하고 지키는 데 헌신해 왔다. 문화재에 대한 아버지의 재능과 열정을 물려받아 김리나 전 교수는 불상 연구에서, 김영나 교수는 서양미술사 부문에서 권위자로 활약하고 있다.
미술사학자인 강우방(67) 전 국립경주박물관장과 강소연(38) 홍익대 강사도 미술사 연구의 맥을 잇고 있는 아버지와 딸이다. 강 전 관장은 석굴암 연구의 권위자로 꼽히며 그의 딸 소연 씨는 일본에서 불교회화를 공부한 소장 학자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소설가 한승원(69) 씨와 한강(38) 씨가 부녀지간이라는 사실은 비교적 잘 알려진 편이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모습이 떠오른다”는 한강 씨는 “아버지를 보면서 일찌감치 글쓰기가 기쁨과 고통을 동반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한강 씨가 2005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1988년 수상자였던 한승원 씨도 참석해 “부녀가 함께 더 좋은 소설로 보답하겠다”며 작가의 길을 함께 걷는 딸을 격려하기도 했다.
이윤기(61) 씨와 딸 이다희(28) 씨는 ‘번역 드림팀’으로 불린다.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이윤기 씨는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등 200여 권의 책을 번역했고, 다희 씨도 최근 청소년 소설을 활발하게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이들 부녀는 셰익스피어의 ‘겨울이야기’와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동 번역했으며, 앞으로 셰익스피어 작품 37편을 모두 번역해 펴낼 계획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해박한 아버지를 따라 딸도 신화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공부하고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문학평론 김병익-예림 부녀
평론스타일은 달라도 늘 새로움 추구
문학평론가 아버지는 따뜻하면서도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평론을, 딸은 진지하면서도 문학적 주관이 뚜렷한 평론을 통해 우리 문학을 조명해 왔다. 같은 길을 걷지만 아버지와 함께 하는 인터뷰를 꺼릴 만큼 평론가로서의 예림 씨는 엄격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번역드림팀 이윤기-다희 부녀
셰익스피어 전체 작품 공동번역에 도전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이윤기 씨와 딸 다희 씨. 200여 권의 책을 번역한 아버지를 따라 다희 씨도 번역 활동을 하고 있다. 부녀는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와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동 번역했으며, 앞으로 셰익스피어 작품 37편을 모두 번역할 계획이다.
■소설 한승원-강 부녀
글쓰기 인생 기쁨과 고통 서로 다독여
소설가 한승원 씨와 딸 강 씨. 항상 아버지가 소설을 쓰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난 강 씨는 일찌감치 글쓰기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함께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들 부녀는 각각 1988년과 2005년에 대를 이어 이상문학상을 수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타악기 연주 박동욱-윤 부녀
“어릴적 아빠 타악기속에 파묻혀 살아”
한국 타악계의 대부 박동욱 씨와 딸 윤 씨. 윤 씨는 어릴 적부터 제자들에게 타악기 레슨을 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리듬감을 배웠다. 딸이 타악기를 전공한다고 할 때 무척이나 반대했다는 아버지는 최근 딸이 연주할 때 악기 튜닝을 자처할 정도로 든든한 후원자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