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달인 되어 해외로 해외로” 반상의 고수 글로벌 포석

  • 입력 2008년 2월 14일 02시 58분


■ 외국어 잘하는 프로기사들

“쭈이진 청지 쩐머양(最近 成績 즘요樣·요즘 성적 어때)?”

목진석(28) 9단은 중국 기사들을 만나면 이렇게 인사말을 건넨다. 목 9단의 중국어 실력은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유창하다.

바둑계의 국제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중국어와 일본어 등 외국어를 구사하는 젊은 프로기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프로기사들이 외국어 습득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세계대회나 교류전에서 만난 외국 기사와 의사소통하며 교류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데다 활동 무대를 해외로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대학(명지대 바둑학과 제외)에 입학한 28명의 기사 중 17명이 외국어 전공을 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최근에는 해외 보급을 위해 영어와 독일어 등을 배우는 사례도 늘고 있다.

▽중국어=젊은 프로기사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외국어는 중국어. 한국과 중국 신예 기사들의 바둑 실력이 대등하고 교류도 활발하기 때문에 중국어의 필요성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

목진석 중국어 강의할 수준

젊은 기사들 중 가장 먼저 물꼬를 튼 것은 목 9단. 그는 중학교 1년 때 홍콩 영화에 빠져 중국어를 독학했다. 1995년 한중 신예대항전에서 창하오 9단, 류징 8단과 어울리면서 실전 중국어를 단련했다. 현재 그의 중국어 실력은 현지인으로 오해받을 정도. 그는 2006년 10월엔 진동규 김형환 이민진 이다혜 김혜민 백지희 등 프로기사들에게 바둑 용어 중심의 중국어 강의를 6개월 동안 하기도 했다.

김승준 9단과 박승철 5단도 수준급 실력. 전화로 부담 없이 대화를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들은 특히 중국 바둑 리그에 수년간 참여해 왔다. 김 9단은 “바둑 실력도 중요하지만 중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는 점 때문에 중국 팀들의 러브 콜을 자주 받았다”고 말했다.

내공이 강한 기사로는 윤준상(6단) 전 국수가 꼽힌다. 윤 전 국수는 중학교 때부터 꾸준히 연마해 온 실력. 목 9단은 “중국 기사들의 얘기를 다 알아듣는데 거의 말을 안 해 실력이 감춰져 있다”고 귀띔했다.

▽일본어=일본 유학파가 많았던 1960, 70년대에는 일본어가 바둑계의 대세였다. 하지만 지금은 일본이 한중일 3국 중 가장 실력이 뒤지기 때문에 일본어에 흥미를 느끼는 기사들이 중국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조치훈 9단 문하생으로 일본에서 입단했던 김광식 6단과 언니가 일본 프로기사와 결혼한 김효정 2단이 일본어에 능통하다.

안영길 “영어 무기 유럽 진출”

▽영어와 기타 외국어=바둑이 한중일 3국에 집중돼 있는 현실이어서 영어에 흥미를 갖는 기사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하지만 일부 기사는 해외 바둑 보급을 꿈꾸며 영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영어를 잘하는 기사로는 김명완 8단이 1순위로 꼽힌다.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그는 토익이 900점을 넘고 회화도 막힘이 없어 다른 프로기사들에게 기본 회화를 가르칠 정도. 고려대 영문과에 재학 중인 여성 기사 조혜연 8단도 수준급이다.

안영길 6단은 2006년 군 복무를 마친 뒤 승부사의 길을 접고 보급 기사로 유럽 지역에 진출할 예정이다. 그는 ‘한상대 바둑영어교실’에 다니면서 1년 반째 영어를 습득하고 있다. 기회가 닿으면 유럽으로 진출할 예정. 안 6단은 “후배들의 거센 추격 때문에 승부의 길을 더 걷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아 보급 기사로 나서기로 했다”며 “영어 실력을 더 쌓은 뒤 해외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윤영선 독일서 바둑 보급

고참 기사인 천풍조 8단은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유럽 등을 돌아다니며 일찍부터 한국 바둑 보급에 힘쓴 기사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인 남치형 초단과 정수현 9단도 빼놓을 수 없는 영어 고수다. 최근엔 윤영선 5단이 한국에 바둑 유학을 왔던 독일인 아마추어 기사와 결혼한 뒤 강승희 2단과 함께 독일에서 보급 활동을 벌이고 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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