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정작 그 무엇도 지우지 못한 사람은 그의 아버지였다. 죽은 아들은 이 산언덕에서의 기억을 잊고 지금쯤 그 어디엔가 다시 태어났을 텐데 그의 아버지는 이 산언덕에서 목이 메는 초혼가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울어도 볼 수 없고 눈물로도 그릴 수 없는 아이의 모습을 그리며 아버지는 눈물로 설 아침을 맞고 있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인연이란 무엇인가. 그 인연이 얼마나 크기에 그는 눈물로 설 아침을 맞고 있는 것인가. 그의 눈물을 보며 나는 내게 질문을 던졌다. 누구나 죽는다는 순리만으로는 자식을 잃은 슬픔은 치유될 수 없는 것인가.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무상의 현존 앞에서 우리는 왜 이리도 슬픔에 목이 메어야 하는 것인가. 삶과 죽음은 다만 형상의 거울에만 있을 뿐 마음의 빈 거울에는 원래 없는 것을 우리는 무엇을 일러 삶과 죽음이라고 하는가.
세상에는 치유되지 않는 슬픔이 있다. 가슴에 자식을 묻는 것이 그것이다. 그것은 살아서는 치유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그는 설이 되면 이 자리에 와서 오늘처럼 눈물을 흘릴 것이다. 아버지라는 인연으로 그는 평생을 눈물 흘리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 지중한 인연에 앞서는 진리가 과연 무엇이겠는가. 아버지의 눈물은 무상한 삶의 진리마저도 지우며 평생을 흐를 것만 같다.
나는 산길을 오르며 읊조렸다. 나지 마라 죽기 어렵나니, 죽지 마라 태어나기 어렵나니. 인연이 그치면 눈물도 다하리니. 인연이 다하는 날이 그 언제일는지. 겨울 햇살이 눈물처럼 내 발길에 내렸다.
성전 스님 남해 용문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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