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같이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자리이지만, 이들 사이에 연관성을 찾기는 쉽지 않다.
보통 사람이라면 하나도 맡기 힘든 자리를 모두 맡아 본 사람이 있다.
하나로텔레콤 박병무 사장이다.
그는 지금 맡고 있는 일도 얼마 안 있으면 그만 둔다. 하나로텔레콤 매각작업을 마무리한 박 사장은 3월 하나로텔레콤 주주총회가 끝나면 회사를 떠난다. 》
이명박 정부의 초대 정무수석비서관에 내정된 한나라당 박재완 의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그도 31년 전에는 종합무역상사에서 납품 받은 봉제품에서 불량품을 걸러내는 일을 하는 새내기 사원이었다.
당시 목격한 ‘부패 사슬’에 충격을 받아 입사 1년 만에 사표를 낸 뒤 2년간 고시 공부에 매달려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2003년 16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접고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긴 뒤 2004년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보통 사람들은 대학 졸업 후 한 분야에 종사하다 은퇴 후 ‘인생 후반전’을 맞는 2모작인생을 살지만, 박 사장과 박 의원은 다모작 인생을 살고 있는 셈이다.
변화된 삶 원할 때 과감하게 직장 옮기는 사람들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새로운 도전을 위해 미련 없이 새 길을 찾아 떠나는 그들의 삶은 ‘잡 노마드(Job nomad)’를 연상케 한다.
독일의 미래학자 군둘라 엥리슈는 평생 한 직장, 한 지역, 한 가지 업종에 얽매여 살지 않는 사람을 ‘잡 노마드’라고 정의했다.
박 사장과 박 의원은 여러 분야를 넘나들었지만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는 않았으므로 ‘한국형’ 잡 노마드라고 부를 수 있다.
다모작 인생을 사는 ‘잡 노마드’는 박 사장이나 박 의원처럼 잘나가는 유명인사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한 번 사는 인생, 한 가지 일을 천직(天職)으로 여기고 살기에는 재능이 너무 많거나 관심사가 다양한 사람들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펴낸 ‘미래의 직업세계 2005’에서는 잡 노마드를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삶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안정된 직장과 그 속에서 쌓은 업적을 미련 없이 버릴 수 있는 용기, 미래에 대한 낙관,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성 등이 ‘잡 노마드족’에게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이다.
이들은 월급이 반 토막이 나더라도, 새로운 분야가 덜 명예스럽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이런 점에서 더 높은 자리와 좀 더 나은 처우를 좇아서 같은 업종의 다른 직장으로 옮기는 사람들과 다르다.
한 직장과 한 가지 업종에 목매지 않고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다모작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원하는 일을 한다
문화관광부 도서관정보정책기획단 제도개선팀 차성종(38) 사무관.
1997년 8월 대학을 졸업한 그의 첫 직장은 여행사였다. 3개월 정도 근무했을 무렵 민족사관고 교사 모집광고를 보고 지원서를 냈다.
국가의 동량을 길러낸다는 보람과 강원도의 한적한 시골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생활하는 목가적인 삶이 그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하지만 그가 바라던 ‘목가적인 삶’을 1년 만에 접고 세종대 교직원으로 옮겼다.
글=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돈도 명예도 안정된 직장도 우릴 막진 못해요
차 사무관은 “학생들과 함께 지내며 차세대 미래지도자를 직접 길러낸다는 보람도 있었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바쁘게 지내는 도시의 삶이 그리웠다”고 말했다.
신이 내린 직장으로 꼽히는 대학 교직원이란 자리도 그를 붙잡지는 못했다.
관료적이고 수직적인 상하관계가 싫었다.
6년 정도 같은 일을 하면서 삶도 무미건조해졌다. 그래서 옮긴 직장이 국책 연구소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세종대에서 근무하면서 취득한 석사학위를 인정받았고, 연봉도 전 직장보다 500만 원 더 많았다. 무엇보다 자유롭고 전공분야에 대한 자기계발을 적극 장려하는 학구적인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국가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중앙정부의 정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서 지난해 6월 옮긴 곳이 지금의 자리다.
2년 계약직에 최장 5년까지만 연장되는 불안한 신분인 데다 연봉은 1200만 원 정도 깎였다. 직장인이 한 달 100만 원 적은 수입을 감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아내는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며 말렸다.
그는 무엇을 얻었을까?
차 사무관은 “내가 밤새 만든 보고서가 더 나은 국가를 만들기 위한 정책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며 “학교나 연구소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2년 혹은 5년 뒤 미래가 불안하지는 않을까?
“전혀 불안하지 않습니다. 미래가 불안했다면 정년이 보장되는 대학에서 교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었겠죠.”
○ 나이 마흔에 길을 떠나다
대학 졸업 후 고교 수학교사와 학원 강사를 거쳐 학원 원장이 된 40세의 여성.
지나온 삶의 궤적대로라면 이후의 인생 경로도 학원가에서 멀리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45세가 되는 동안 세 군데의 직장을 거쳐 건설회사 임원으로 변신한 사람이 있다.
우림건설 안혜진(45) 이사.
1986년 전주 근영여고 수학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안 이사는 직업 군인인 남편과 결혼한 뒤 남편을 따라 속초, 안동, 광주, 서울 등으로 옮겨 다니면서 강사도 하고 학원도 직접 운영했다.
그의 인생 항로는 2003년 무공해 페인트 회사인 이스코바이오텍 창업 멤버로 합류하면서 급선회한다.
안 이사는 “늘 새로운 일을 하고 싶은데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은 생활이 계속되는 게 힘들었고, 여유 있는 생활도 내 체질에는 맞지 않았다”고 했다.
2005년 이스코바이오텍의 거래처였던 우림글로벌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회사를 옮기면서 건설현장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도시개발 정비사업을 하던 우림글로벌은 대형 건설사의 틈바구니에 끼여 고전하다 2007년 회사 청산절차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직원 12명 중 11명이 일자리를 잃고 안 이사만 모(母)회사인 우림건설로 자리를 옮겼다.
안 이사는 “우림글로벌에 근무하는 동안 내가 제안한 프로젝트가 사업 수주에 성공하는 등 성과를 냈고 여성 인력을 키우겠다는 심영섭 회장의 의지도 작용했다”고 말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모험하는 일을 즐긴다는 안 이사는 “나 자신을 채울 수 있는 계기가 있으면 해외도 좋고 어디든 나아갈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 새로운 일을 통해 인생을 배운다
영국계 주류회사 디아지오코리아 유동환(38) 이사.
미국 시라큐스대 로스쿨을 졸업한 유 이사가 1996년 한국에 들어와서 처음 들어간 직장은 옛 동서증권이었다. 한국의 금융시장을 배우기 위해 당시 증권업계에서 ‘사관학교’로 불리던 동서증권을 선택했다.
첫 직장에서 2년 정도 근무했을 무렵 옛 주택은행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회사를 옮겼다. 주택은행에서 1년간 일한 뒤 1999년 12월 법무법인 대륙에 둥지를 틀었다.
대륙에 근무하면서 대한생명이 JP모건과의 3년여에 걸친 법정분쟁에서 승리하는 데 적지않은 역할을 해 주목받았다.
변호사로 탄탄대로를 달리던 그는 2006년 공기업 직원으로 변신한다.
그해 3월 정부 보유 외환과 공공기금을 운용하는 ‘국부(國富) 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가 설립되자 창립 멤버로 합류했다. KIC 사장 법률자문관이 그의 자리였다.
공기업으로 옮기면서 월급은 반 토막이 났지만 국부를 키운다는 자부심이 새로운 일을 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유 이사는 “평소 한국에도 KIC같은 기관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며 “KIC가 세계 최고의 국부 펀드가 되는 데 힘을 보태고 싶어서 지원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부처 공무원들과 한국은행 출신이 주축을 이룬 KIC의 관료화된 조직 문화는 그의 ‘체질’에 맞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3월 디아지오코리아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주류회사 이사로 다시 한 번 변신을 한다.
술을 파는 회사라는 부정적인 선입견이 있었지만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분야여서 끌렸다고 한다. 세계적인 기업이라는 점 또한 매력이었다.
“디아지오는 세계 최고의 주류 회사입니다. 세계 최고 기업에서는 다른 기업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회사 임원으로서 기업 경영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만족하고 있습니다.”
직장을 옮겨 다니면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한 곳에만 있었으면 경험하지 못했을 새로운 것들을 계속 배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소득입니다. 매일 매일 배우고 있죠. 잃은 것이 있다면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장가도 늦게 갔죠.”
그는 지난해 12월 결혼한 ‘늦깎이 새신랑’이다.
○ 잡 노마드족, 메뚜기족, 프리터족
한 곳에 얽매이지 않고 떠나고 싶을 때 언제든 떠나고, 기회가 생겼을 때 자신이 하고 싶은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잡(job) 노마드족.
멋있어 보이지만 잘못하다가는 한 곳에 자리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메뚜기족’이 되거나, 필요한 돈이 모일 때까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는 ‘프리터족’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한상근 박사는 “잡 노마드족이나 메뚜기족, 프리터족은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닌다는 점에서는 비슷해 보이지만 잡 노마드족은 이직이나 전직이 자발적이고, 그 목적이 자아실현에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메뚜기족이나 프리터족과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헤드헌팅 업체인 제스트컨설팅 김태형 대표는 “전문성을 생각한다면 여러 분야로 옮겨 다니는 것보다는 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는 게 좋다”며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한 분야에서 일하기가 싫다면 여러 분야에서 응용할 수 있는 핵심 역량을 길러야 새로운 분야에서 연착륙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모작 인생을 살고 있는 공병호경영연구소 공병호 소장의 조언은 전직이나 변신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새겨 들을 만 하다.
그는 경제연구소 연구원과 대학 강사, 벤처기업 사장, 정보통신기업 대표 등을 거쳐 현재는 자신의 이름을 딴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 소장은 “남 보기에 번지르르하거나 그럴듯해 보이는 변신은 결국에는 득보다는 실이 많다”며 “누구나 DNA에 새겨진 자신의 특장점이 있는데 그걸 잘 찾아야 된다”고 말했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잡 노마드(job nomad):
:메뚜기족:
한 직장에 정착하지 못하고 더 나은 조건을 좇아 이리 저리 직장을 옮겨 다니는 직장인.
:프리터족:
프리 아르바이터(free arbeiter)를 줄인 말. 필요한 돈이 모일 때 까지만 일을 하고 일을 그만 두는 사람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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