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업계가 전쟁과 테러의 두려움, 심각해져가는 지구의 온난화 현상, 불안정한 세계 금융 시장 등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착륙했을 때 프랑스의 대표적인 디자이너였던 피에르 카르댕, 앙드레 쿠레주는 우주복에서 영감을 받은 실버 메탈 소재와 미니멀한 원피스와 실버 부츠 등 미래적인 의상을 선보였다.
20세기를 앞두고서는 허무주의가 영향을 미쳐 모든 것을 절제시킨 미니멀리즘과 암흑기였던 중세 시대풍의 의상이 유행했다. 이라크전쟁이 발발했을 당시에는 디자이너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밀리터리룩과 중동 전통 의상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올 봄여름 컬렉션은 어떠할까. 대중은 물론 디자이너들조차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두려움으로부터 현실 도피를 선택한 듯하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처럼 전쟁과 테러, 기상 악화 등 모든 불안정한 현실이 꿈이길 원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동화 속 판타지를 자신의 옷 속에 불어넣었다.
요정과도 같은 여인이나 아름다운 낙원이 연상되는 꽃 그림 등 다양한 일러스트가 무대 위의 드레스와 스커트에 등장했다. 또한 분홍색, 노란색, 주홍색 등 눈이 부시도록 선명한 색상을 거침없이 사용하고 섞는 작업을 통해 디자이너들은 지상에서 영원을 염원하는 듯하다.
특히 뉴욕부터 밀라노, 파리에 이르기까지 눈에 띄게 등장했던 것은 바로 1970년대의 히피 문화였다. 자유를 외치며 자연으로 회귀한 70년대 히피 문화를 동경하는 듯 디자이너들은 땅바닥을 모두 청소라도 할 듯이 끌리는 보헤미안 스타일의 드레스나 폭이 넓은 나팔바지, 커다랗고 강렬한 꽃무늬를 선보인 것이다.
단, 이번 시즌에 선보인 히피 룩은 기존과는 달리 조금 더 절제되고, 예술적인 감성으로 연출돼 새롭게 느껴진다. 또 머나먼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듯 사파리룩도 만들었다. 셔츠 칼라에 아웃 포켓, 단추와 벨트 장식 등 사파리풍의 재킷슈트가 올봄 주요 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지금 가장 심각하게 떠오르는 문제는 역시 지구의 온난화 현상일 것이다. 디자이너들은 환경오염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연친화적인 면, 마 소재 의상에 색상도 천연 소재를 상징하는 아이보리나 사막의 모래와도 같은 베이지가 주류다. 손으로 이어 만든 수공예품 같은 장식이나 소재도 디자이너들이 꿈꾸는 유토피아를 보여준다.
스타일은 우리가 속해 있는 환경 속에서 그 방향이 결정된다.
서은영 패션 스타일리스트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