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ravel]벤츠 ML 63 AMG 타고 양수리 드라이빙

  • 입력 2008년 2월 18일 02시 56분


《1991년의 일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훔친 자동차로 절도행각을 벌인 한국판 ‘캐치 미 이프 유 캔’ 스토리인데 벤츠 AMG 차량을 보니 다시 생각난다. 정장차림으로 호텔 프런트에 다가가 미리 점찍어둔 차량번호를 대고 주인 행세를 하는 수법으로 차를 훔친 뒤 밤털이를 해온 김모 씨의 이야기다. 그의 범죄 중 하이라이트는 일본 오사카에서 미쓰비시중공업 회장의 승용차를 훔친 사건이다. 그 차가 ‘벤츠 8200cc’였다. 당시는 벤츠가 한국에 상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그래서 벤츠 차종에 대해 잘 몰랐으나 그래도 8200cc 벤츠는 들어본 적이 없던 터라 딜러에게 물었다. 그때 들었던 답변이 “생산모델은 없지만 AMG(‘에이엠지’라고 읽음) 튜닝이라면 가능하다”였다.》

두물머리, 그곁 가파른 산기슭을 고요히 올랐다

그는 이 차로 근 한 달간 일본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검문은커녕 외상으로 호텔 투숙까지 했다고 진술해 경찰관을 놀라게 했다. 미쓰비시중공업 회장차라고 하니 어디든 통하더란다. 하필이면 일본에서 이런 최고급 차를 훔쳤을까. 그 대답이 기막혔다.

한 감방에 있던 선배 도둑의 가르침 덕분이었다. 도둑이 되려면 큰 도둑이 되라는. 그 말에 깊이 깨친 바가 있어 뜻을 세웠다고 했다. 일본 재벌회장의 차를 훔치는 계획이었다. 출소 후 실행에 옮겼다. 학원에서 일본어까지 배웠다. 그는 10개월 만에 마스터했다고 했다. 일본인마저 일본사람으로 오인할 만큼 능숙했다니 머리와 재주가 비상한 도둑임에 틀림없다.

‘AMG’는 그때 알게 된 단어다. 그로부터 17년 후. 말로만, 그것도 오래전 우연히 들었던 ‘AMG’ 이니셜의 벤츠를 몰게 된 것이다. M시리즈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ML 63 AMG다. AMG는 벤츠의 자회사다. 그러나 그 시작(1967년)은 독립된 튜닝회사였다. 창업자는 다임러-벤츠 연구소에서 함께 일하던 두 장인, 창업지는 그로사스파크라는 곳이었다. AMG는 자신들의 성과 그로사스파크의 첫 이니셜을 조합한 것이다. 현재는 벤츠 차량의 성능개량과 특수차량 개발을 도맡고 있다. 벤츠 모델에 AMG가 붙은 것은 모두 AMG의 기술력으로 성능을 개량한 ‘특별한’ 차다.

AMG는 곧 장인의 손길을 뜻한다. 수공작업과 기술력의 결실이다. AMG모델의 엔진에 새겨진 그들의 사인이 그것을 웅변한다. 이름을 걸고 마친 작업의 결과, 역시 이름을 걸고 그 결과를 보증한다. ML 63 AMG는 그런 차다. ‘63’은 배기량(6209cc)을 뜻한다. 실린더 한 개의 배기량이 776cc니 실린더 한 개가 마티즈 한 대에 맞먹는다. V8엔진이니 마티즈 8대가 엔진룸에 들어간 셈이다.

그 덕분에 힘은 가공할만한 정도다. 정지상태에서 100km에 이르는데 5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5초라. 작은 체구의 스포츠카에게도 버거운 수치다. 하물며 4.8m에 2.2t에 이르는 둔중한 SUV차량에는 불가능의 수치다. 이런 수치는 도전욕을 자극한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보았다. 단숨에 5000을 훌쩍 넘기는 rpm, 동시에 터져 나오는 폭발적인 가속력. 여객기의 이륙 순간 느낌(관성에 의해 등이 시트에 압착되는)보다도 강했다. 전투기라면 이쯤 되지 않을지….

ML 63 AMG로 찾은 곳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경기 양평군)다. 두 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이르니 깡깡 얼어붙은 강이 나를 맞는다. 40년 전만 해도 한겨울 한강 동결 일수는 40일을 넘었다. 그런데 지금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나마 지난해는 제로다. 언 강을 보니 지구온난화의 시름이 조금은 가신다. 두물머리는 언제 찾아도 평화롭다.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 너른 물 덕분이다. 그런데 오늘은 더더욱 한가롭다. 그 물마저 얼어붙어 미동조차 없어서다.

두물머리 입구의 양수대교 앞 양수리 번화가. 허름한 돼지국밥 식당에서 순댓국 한 그릇을 시켰다. 그 맛이 진국이었다. 뚝배기에 담아 그 즉시 펄펄 끓여낸 국물에 파와 들깨가루를 듬뿍 치고 새우젓으로 간해 훌훌 말아먹는 그 맛. 시골장터에 온 기분이다. 국밥을 먹던 중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돼지국밥과 문 앞에 세워둔 1억3990만 원짜리 럭셔리 슈퍼카가 어째 좀 어울리지 않은 듯해서….

옛 양수교를 건너면 남양주군 조안면이다. 다리 정면을 보자. 높은 산(운길산) 중턱의 숲에 조그만 절집 하나가 보인다. 수종사다. 이 절에는 아픈 추억이 있다. 7년 전 한밤중 군데군데 얼어붙은 가파른 산길을 구식 갤로퍼로 내려오다 진땀을 뺐던 일이다. 앞서 가던 주지스님의 렉스턴은 자동장치(미끄럼방지 및 속도조절)로 쉽게 내려가는데 브레이크뿐인 내 차는 가차 없이 미끄러진 탓이었다. 그 산길을 오늘은 ML 63 AMG로 올랐다. 그것도 아주 가뿐히. 그리고 아주 우아하게 내려올 수 있었다.

해발 260m의 가파른 산기슭에 깃든 수종사. 좁은 경내지만 경치만큼은 대한민국 최고다. 정면으로 남북의 한강과 다리가 두물머리와 더불어 두루 조망된다. 이 수종사는 다산의 문집에도 등장하는데 그는 예서 추사 그리고 한국의 다성이라 불리는 초의선사가 더불어 함께 차를 마시고 시를 읊었다.

수종사는 이름 그대로 물의 절이다. 약사전 밑 바위에서 샘솟는 물은 그 맛이 천하일품으로 소문났다. 그 물로 달인 차를 한강을 내려다보며 즐긴다면 더더욱 좋으리. 그래서 주지스님은 이곳에 다실을 지었다. 전망 좋은 절벽 가에 다실 ‘삼정헌’은 그렇게 들어섰다. 차는 곧 선이요 선이란 곧 불가의 가르침. 수종사에 삼정헌을 둔 것은 그것을 알림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래서 여기서는 찻값을 받지 않는다. 누구든 찻상에 앉아 스스로 물을 따라 차를 달여 마신다. 그러나 돌아갈 때 적으나마 시주를 한다면 더더욱 좋지 않을는지.

양평·남양주=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 여행정보

◇찾아가기

▽두물머리=올림픽대로∼팔당대교∼국도6호선∼양수대교∼양서면 번화가∼우회전(두물머리 이정표) ▽수종사=6번국도∼조안 나들목∼국도45호선(청평 서종면 방향)∼진중삼거리∼1.8km∼왼쪽에 ‘운길산 수종사’ 이정표 보고 좌회전.

◇맛집

▽돼지마을=순대국, 돼지족발 전문. 경기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987 중심가. 031-774-1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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