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S A...X K W.’
상대가 천천히 26개 알파벳을 읽어 나간다. 원하는 글자가 나오는 순간, 주인공은 놓칠세라 왼쪽 눈을 깜박여 신호를 보낸다. 1년 3개월 20만 번 넘게 같은 동작을 되풀이한 끝에 ‘잠수종과 나비’란 책 한 권이 탄생한다. 프랑스인 장 도미니크 보비의 자전적 이야기다.
돈, 명예, 사랑을 누리던 마흔 세 살 남자. 어느 날 갑자기 쓰러졌다가 깨어나 보니 의식은 멀쩡한데 왼쪽 눈 빼곤 온몸을 꼼짝할 수 없다. 가혹한 운명 앞에서 자포자기하지 않는 ‘인간 승리’의 드라마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화가이자 감독인 줄리앙 슈나벨은 이를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는 단조로운 삶과 비범한 삶 사이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음을 깨닫게 해 준다. 한 눈으로 여자의 가슴도 슬쩍 훔쳐보고 축구 중계에 열 내는 흔하디흔한 보통 남자. 그러면서도 현재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보겠다는 부질없는 욕망을 내던진, 어찌 보면 비범한 인간. 불평과 자기 연민을 버린 순간부터 그 둘은 하나였다.
평범한 삶 속에 보석처럼 숨겨진 작은 행복. 고만고만한 삶이지만 그 안에서 소중한 가치와 위안을 발견하는 일이야말로 비범한 행위요, 각자의 몫이다. ‘저녁 때/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힘들 때/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나태주의 ‘행복2’)
그런 평범한 존재들을 밝고 즐겁게 표현한 작품을 전시장에서 만났다. 눈 돌리는 곳 어디서나 다가오는 빙그레 웃는 얼굴들. 색동 막대 숲에, 팝콘처럼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꽃잎 사이에도 있다. 29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박여숙화랑에서 열리는 권기수(36)의 ‘4 SEASONS’전의 풍경이다. 그림 조각 영상 설치작업에 동글동글한 이미지가 넘친다. 이름 하여 ‘동구리’. 작가에 따르면 평범하고 이름 없는 이들을 상징화한 ‘기호’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작가. 남녀노소의 모습을 아우르는 원초적 형상을 찾기 위해 먹으로 수없이 사람을 그리고, 또 그린 끝에 동구리는 탄생했다.
동양화적 요소를 디지털적 방식으로 표현한 아날로그적 결실을 모아 놓은 전시장. 한 벽을 차지한 대작 ‘Time’(227×130cm·2007∼2008)에선 작가의 특징이 한눈에 드러난다. 대나무와 매화, 낚시하는 사람 등 산수화에서 모티브를 따 온 그림. 그 속에 동구리는 행복해서만 웃는 것일까. “강태공은 늘 웃으면서 낚시를 했을까. 동구리는 서커스의 피에로처럼, 속으로 울어도 겉으론 웃을 수밖에 없는 현대인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동구리는 세상을 둥글게 살자는 뜻이다.”
왼쪽 팔을 치켜들고 우주를 향해 날아가는 앤디 워홀(1928∼1987)의 ‘슈퍼맨’(96.5×96.5cm·1981). ‘권기수’전이 열리는 같은 건물의 1층 오페라갤러리에서 이번엔 미국 팝 아트의 주역이 등장시킨 대중문화의 우상과 만났다. 다이아몬드 가루를 뿌린 실크스크린 판화 위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슈퍼맨, 그는 너무도 비범해 고독해 보인다. 동유럽 이민자 출신이라는 자기 신분을 의식해 스타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는 워홀. 스타와 권력자 등 현대판 영웅의 초상화를 제작해 스스로 현대미술의 슈퍼맨이 되는 것으로 그의 열등감은 치유됐는지 궁금해진다.
가장 고결한 것은 가장 평범한 것에 들어 있다고 한다. 두드러진 업적과 성취를 남기지 못해도 괜찮다. 불리한 여건과 싸우는 평범한 이들도 자기 인생에서는 진정한 영웅이므로. 수수한 들꽃은 화려한 장미를 닮고 싶어 애쓰지 않는다. 그 자체로 온전히 아름답기에.
비범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힘이, 평범한 인생에 감사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힘은 몰라도, 용기란 마음먹기 달린 것 아닐까. 내 기대치보다 덜 유능하고 더 어리석은 나를 받아들이는 용기 말이다. ‘내가 바라는 만큼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이란 금언을 다시 생각해 본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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