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40기 숭례문 화재 남의 일 아니다

  • 입력 2008년 2월 20일 03시 03분


최근 숭례문 화재로 문화재 방재 시스템 부실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1월 문화재청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한 조선 왕릉 40기(왕비의 능 포함)도 대부분 방화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9일 문화재청의 2008년 조선 왕릉 소방시설 현황 자료에 따르면 조선 왕릉 관리소 14곳 중 폐쇄회로(CC)TV가 설치된 곳은 건원릉(태조)이 있는 경기 구리시 동구릉(조선 왕릉 9기가 있는 곳)지구관리소, 선릉(성종)이 있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선·정릉지구관리소 등 3곳에 불과했다. 경보 설비가 갖춰진 곳은 서울 성북구 석관동 의릉(경종)지구관리소 등 2곳에 불과했다.

조선 왕릉은 무성한 숲, 잔디뿐 아니라 정자각(왕릉에 제사지내기 위해 지은 집) 등 목조 건축물들이 있어 화재로 인한 원형 훼손 위험이 큰 문화재. 지난해에도 선·정릉 등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잇달아 일어나기도 했다. 유네스코는 세계문화유산 보존관리 의지를 중요하게 평가하고 있어 왕릉의 방재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더욱이 조선 왕릉은 군부대와 정부기관이 들어서 원형 훼손이 심각한 곳도 적지 않아 세계유산 등재까지 해결해야 할 난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화재 경보 설비 파악도 안돼=동구릉지구관리소의 CCTV는 불과 3개. 현릉(문종) 목릉(선조), 숭릉(현종) 등 동구릉의 왕릉 9기를 관리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지난해 CCTV 설치를 시작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왕릉관리소 전체에 모두 설치하려면 10년이 걸릴 것”이라며 “침입, 화재경보 시설에 대해서는 정확한 현황을 파악하지 못했지만 올해부터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결국 부실한 방재 시스템 때문에 화재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선·정릉에서는 지난해 4월 방화로 왕릉 뒤편의 일부 잔디가 불탔고, 5월 동구릉에선 방화범이 목조 건축물인 화장실 일부를 태웠다. 2006년 3월 경기 남양주시 광릉(세조)에서 일어난 화재는 왕릉 주변 잔디를 1000여 평이나 태웠다.

▽왕릉 훼손 시설 이전, 갈 길이 멀다=체육시설, 정부기관으로 훼손된 조선 왕릉의 원형을 복원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 그러나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중종 계비)에 있는 사격장을 8월 베이징 올림픽 이후 철거하기로 한 것을 제외하면 관련 기관의 이전은 아직 먼 얘기다.

효릉(인종)이 있는 경기 고양시 서삼릉(조선 왕릉 3기가 있는 곳)엔 농협중앙회 젖소개량부가 들어서 서삼릉의 중간을 끊어놓은 상태. 문화재청에 따르면 지난해 농림부는 이전 원칙에 동의했으나 이전 용지와 예산 확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철거와 복원까지 상당 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명릉(숙종)이 있는 고양시의 서오릉(조선 왕릉 5기가 있는 곳), 서울 성북구 정릉동의 정릉(태조 계비) 등 왕릉 7곳엔 군부대가 들어서 있지만 국방부와의 이전 협의는 걸음마 단계. 서울 의릉의 경우 국가정보원 부속 건물과 한국예술종합학교 건물은 각각 올해와 2012년까지 이전할 계획이다. 문화재청 궁릉관리과 김종수 과장은 “2020년에야 원형의 완전 복원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원형 복원, 보존 관리 의지 중요”=문화재청은 “관련 기관과 협의를 바탕으로 올해 3∼9월에 있을 유네스코 실사 때 구체적 계획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사 때까지 방재 시스템 마련, 이전 협의에 따른 원형 복원 계획이 현실화되지 않으면 보존 의지를 의심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관계자는 “등재 신청은 관리 계획과 복원 의지를 잘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등재 여부는 조선 왕릉의 진정성을 훼손하지 않는 상태로 만들어 놓아야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조선 왕릉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는 내년 7월 스페인에서 열리는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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