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일상을 만날 때]편의점 나올때마다 상쾌하지 않은 이유

  • 입력 2008년 2월 22일 02시 55분


이상한 가게를 처음 봤던 때를 기억한다. 7 또는 25 같은 숫자가 적혀 있는 화려한 색상의 간판. 저 낯선 곳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궁금해서 들어갔더니 뭐야, 집 앞 구멍가게랑 똑같은 걸 팔잖아. 당혹스럽고 아쉬웠지만, 이렇게 깨끗하고 세련된 구멍가게도 있구나, 감탄했던 곳.

소설가 김애란(28) 씨도 처음 편의점을 봤을 때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통유리의 매장은 안쪽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곳에는 라면 과자 스타킹 같은 것들이 멋지게 전시돼 있었다. 익숙했던 구멍가게용 물건들은 편의점 안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산책하듯 편의점을 드나들던 김 씨는 상품에 바코드 검색기를 대는 총각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저 사람이 내가 사는 물건으로 내 취향을 알 수도 있을 텐데.

단편 ‘나는 편의점에 간다’에서 ‘나’는 아마도 내 취향을, 나를, 알 것 같은 편의점 청년에게 묻는다. “저, 이 근처 사는… 항상 제주 삼다수랑, 디스플러스랑 사갔는데… 쓰레기봉투는 꼭 10L짜리만 사가고, 햇반은 흑미밥만 샀는데… 모르시겠어요?” 한참 미간을 찌푸리던 청년은 이렇게 대답한다. “손님, 죄송하지만 삼다수나 디스는 어느 분이나 사가시는데요.”

김 씨는 “가장 가까이 있는 일상적 공간을 통해 시대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한다. 한순간도 불이 꺼지지 않는 그 쾌적한 공간은 참으로 극진하게 편의를 배려하는 것 같다. 그런데 하나가 없다. 외상장부. ‘필요한 건 뭐든 있고 아무 때나 살 수 있다’며 최대한 편의를 강조한다는 이곳은 한 가지 단서를 달아놓는다. ‘지갑 없는 사람 빼고.’

‘맘모스 편의점’ ‘사건의 핵심’ ‘긴 하루’ 등 편의점 단편 3부작을 쓴 소설가 구광본(43) 씨. 구멍가게냐, 편의점이냐 선택하라면 돈을 조금 더 쓰더라도 상쾌한 편의점을 택하겠다는 그. 대부분의 도시인들이 그럴 것이다. ‘인간이 시간을 정복하기 위해 생활의 속도를 높여가면서 만들어낸 꿈의 정거장’(‘긴 하루’ 중)을 소설 속 카메라처럼 관찰하던 구 씨는, 그토록 깔끔하고 편리한 공간에서 만난 깊고도 불편한 현대인의 고독을 발견하고 소설로 옮겼다.

많은 작가가 그렇듯 구경미(36) 씨도 올빼미 생활을 한다. 밤늦게까지 글을 쓰다가 배가 고파져서 편의점에 가면 영 편치 않다.

“온통 어둠인데 홀로 엄청나게 불이 밝다. 그렇게 환한 곳에서, (밤이니까 당연히) 후줄근한 모습으로 물건을 고른다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 시간에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개 술에 취해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우울한 표정이거나 눈물을 훌쩍이고, 단편 ‘동백여관에 들다’(소설집 ‘노는 인간’ 중)에서처럼 성을 내고 싸운다. 햇빛 아래 드러나지 않던 얼굴들. 작가는 그런 사람들을 보고 상상력을 키운다. 문학은 그렇게 가려졌던 것들로부터 새어나온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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