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 입력 2008년 2월 23일 02시 59분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피에르 바야르 지음·김병욱 옮김/238쪽·9800원·여름언덕

어느 때부터일까. 자기 소개란의 ‘취미’ 항목에 독서를 쓰면 멋쩍은 일이 됐다. 독서는 생활이니까. 누구나 당연히 할 일이기 때문이다. 독서의 생활화. 누군가의 교양을 가늠하는 잣대로 작용한다. 하지만 그 순간, 책 읽는 즐거움은 사라진다.

‘읽지 않은 책…’은 얘기한다. 책, 안 봤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세상에 책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 볼 수도 없고. 안 읽고 얘기하면 안 되나. 이 책은 이처럼 독서와 책에 대한 고정 관념의 전복을 시도한다.

저자가 보기엔 비독서도 독서의 한 방편이다. 읽지 않고도 책을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8대학 문학교수인 저자가 읽지 않고 ‘들어본 책(heard book)’인 ‘율리시스’의 문학사적 관계 등을 강의 중에 거론하는 것처럼. 대충 훑어봤든, 읽었는데 잊어버렸든, 마음대로 해석하거나 꾸미는 것도 책을 읽는 사람의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가 이런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책보다 인간이 먼저니까.’ 성역처럼 독서를 떠받들지 말자는 것이다. 책도 여느 창작품처럼 하나의 오브제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진정한 독서의 가치는 책을 통해 무엇을 얻고 버릴지 스스로 선택하는 행위에 있음을 지적한다.

“독서라는 창작은 교양의 무게로부터 해방돼 자기 정복을 향해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감을 의미한다.”

읽지 않기를 논하는 이 책은 ‘읽기에’ 재미있다. 비독서란 발상이 독서의 근본 목적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무엇을 얼마나 읽었는가는 중요치 않다. 독서는 ‘수단’일 뿐이다. 진짜 목적은 자아를 발견하고 계발하는 데 있다. 진정한 무술 고수는 초식에 얽매이지 않는 법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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