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아픈 시대의 사랑…‘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 입력 2008년 2월 23일 02시 59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이상운 지음/167쪽·9000원·문학동네

교내 음악감상실에서 빨간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입은 여대생 박은영을 만났다. 너무나 1970년대적인 분위기. 스무 살 나이에다 시대 분위기까지 겹쳐 서툴고 촌스러운 모습이지만 ‘기꺼이 촌스러움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낭만적이다. 이상운(49) 씨의 장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는 한 청년이 첫사랑에 빠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나’와 ‘박은영’의 오랜 시간에 걸친 만남과 이별의 반복이 줄거리다. 그렇지만 애틋한 감정의 묘사는 찾기 어렵다. 청년이 지내온 시간은 사랑을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은영의 꿈은 10만 명의 관객 앞에서 자기 노래를 부르는 것. 그런데 우울한 시국에 은영의 꿈은 사치스럽다. 독재자를 비판하던 선배는 어느 순간 독재자를 닮아 있고, 학생들이 모인 술집에는 느닷없이 사복경찰이 들이닥치는 현실. 운동에 휩쓸린 은영은 나와 사랑을 키울 새도 없이 멀어진다.

다시 만난 때도 1980년대. 대학 시절로부터 10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거리에는 최루탄 가루가 날리고 사람들은 시위를 한다. 우연히 은영과 재회하고 약속을 잡지만, 약속 장소에 은영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그 시대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묘사하지 않는다. 사랑에 여력이 없었던 남녀의 안타까운 만남과 헤어짐을 보여주면서, 역설적으로 우리가 어떤 시간을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작가는 그 시절 미숙한 청춘에 대해 넉넉하고 따뜻하게 품는 시선을 보임으로써, ‘아름답고 쓸쓸하고 담백한’(소설가 성석제의 평) 감정을 이끌어낸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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