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균(46·사진) 시인이 등단한 것은 1986년. 문단에 이름을 알린 지 11년 만에야 첫 시집을 묶었다. 과작의 시인이지만 오래 묵혀 나온 시는 청결했다.
새 시집 ‘거룩한 허기’(랜덤하우스)도 5년을 여문 것이다. 그는 이제 ‘마흔 넘어서/눈이 새까만 계집아이 둘 옆에 누이고서도/출가의 꿈을 꾸며/몸 뒤척이는/몹쓸 날들’(‘국도변’ 중)을 보내는 중년이 됐다.
40대란 ‘나는 어떤 쓸쓸한 생의/부장품일까’(‘어느 쓸쓸한 생의’ 중에서)라고 중얼거리다가도,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 속을 처음 지나가듯이’ 들리는 풍경소리(‘바람의 눈을 들여다보며’ 중에서)에 감동할 줄 아는 나이다.
시집 속 ‘시인의 말’에 그는 “아파트 앞을 지나는 택시 안 여자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고 있었다. 북한산으로 가는 동안 흘낏 본 그 모습이 메아리처럼 가슴 속을 드나들곤 했다”고 적어 놓았다. 엉뚱한 듯한 이 말은, 사람의 상처가 무엇보다 눈에 들어온다는 얘기고, 그 상처가 아프다 해도 지나간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부친을 잃은 막막함에 한동안 시를 멈추기도 했던 그가, 결국 상처가 생과 함께 흘러가는 것임을 알게 됐듯이. 시 ‘희끗한 그림자가’는 그 앎의 절정에 있는 작품이다.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불 꺼진 아이들 방을 기웃대다가/딴전을 피우듯 부엌에서/찻물을 끓이기도 하다가/내 곁에 와 서 있는 수염 까칠한/적막의 손을 잡고/기도하듯 중얼거렸다 아버지/걱정하지 마세요 모두들/잘 지냅니다 별 탈 없이.’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