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니, 애 엄마 너무한 거 아냐? 땀띠난 아기 등에 분가루를 달리면서 뿌리다니…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한 팔로 애를 감싸며 뛰어가는 모습이 불안하기 짝이 없군. 이 사진의 제목? ‘철없는 엄마’ 정도 되지 않을까?
#2. 박물관 난리 났네. 입장하자마자 전속력으로 뛰는 관람객들… 카메라가 날아다닐 정도로 바쁘게 뛰어다니는 이유가 뭘까? 이 사진? 당연히 ‘박물관 꼴불견’이지!
그저 “바쁘게 사는구나”라며 무심코 지나쳤던 이 장면들이 패션 광고라면?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디젤’의 2008년 광고 캠페인 ‘리브 패스트(Live fast)’의 한 장면이다. 빳빳한 옷깃, 헤어스프레이로 힘 준 머리카락, 근엄한 표정…. 과거 패션 광고는 정적인 ‘카리스마’를 담아내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이런 심심한 모습 대신 금방이라도 사진을 뚫고 나올 역동적인 광고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철없는 엄마와 박물관 꼴불견이 ‘패셔너블(fashionable)’한 광고 모델이 되는 시대, 이른바 ‘스펙터클 애드’ 시대가 찾아왔다.
○ 절벽에서 떨어져 흙밭에 뒹구는 남자 화제
디젤은 ‘철없는 엄마’, ‘박물관 꼴불견’과 함께 뛰면서 립스틱을 바르는 소녀들, 교회 예배당에서 금방이라도 뛰어나갈 기세로 기도하는 청년 등 총 4컷을 광고로 내세웠다. 디젤 마케팅팀 노지영 주임은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비판한 광고”라고 말했다. 디젤은 지난해 열대 정글로 변한 프랑스 파리, 물에 잠긴 미국 뉴욕 등 ‘지구 온난화’를 광고에 담아 화제를 모았다.
‘미니멀리즘’으로 대표되는 미국 브랜드 ‘티어리’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미국 출신 신인 사진작가 라이언 맥길리가 촬영한 남성 라인인 ‘티어리맨’의 올봄 광고는 한마디로 ‘사고 현장’ 그 자체다. 푸른색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절벽에서 떨어지며 흙 밭에 뒹구는 모습이 전부다. 여성 라인인 ‘티어리’의 광고 역시 흰 재킷을 입은 여성이 갈대밭을 헤쳐 나가는 장면이다. 단순하고 정갈한 브랜드 자체 이미지와 정반대로 먼지, 흙, 자갈 등이 섞여 ‘야생’의 느낌이 가득하다.
○ 황폐해진 환경 등 사회적 메시지 담아
이 같은 스펙터클 애드는 스포츠, 캐주얼 브랜드를 뛰어넘어 정장, 명품 등 정갈함이 생명인 고급 브랜드에서도 대세다.
‘패션광고=위엄’이라는 공식을 없애려는 데서 나타난 현상이다. ‘파파라치’ 컷 같은 일상의 모습을 통해 최대한 친근하게 다가서겠다는 전략이기도 하다. 이는 8등신 모델들만의 특권도 아니다. ‘버버리’의 올봄 광고는 기타리스트 리암 웨이드, 골프선수 톰 웨이드 등 14명의 젊은이들이 뛰는 모습을 담았다. 버버리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통해 역동성, 에너지, 개성을 나타내려 했다”고 말했다.
브랜드들은 옷의 효능이나 세밀한 바느질 처리가 아닌 ‘메시지’를 담으려고 노력한다. 삼성패션연구소 김정희 수석연구원은 “역동적인 모델을 통해 ‘빨리빨리’ 병에 걸린 현대인, 사막이나 황무지 같은 야생 배경은 황폐해진 자연 환경을 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생동감을 위해 옷은 구겨져도 괜찮다는 것일까? 대답은 ‘노’다. 이런 사회적 메시지의 궁극적 목표는 브랜드 인지도 높이기에 있다. 김 연구원은 “소비자에게 호기심을 유발하고 브랜드를 각인시키기 위해 갈수록 파격적인 이미지와 메시지를 도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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