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링(malling)’이란 말은 아직 한국에서 널리 사용되는 용어가 아니다.
인터넷에는 “몰링이 무슨 뜻인가”를 묻는 질문이 적지 않다. 몰링에서 ‘ing’를 빼보자. ‘몰(mall)’이 남는다. ‘코엑스몰’ ‘아이파크몰’의 바로 그 몰이다. 상점과 극장, 음식점 등이 모여 있는 복합 상업 공간을 뜻한다.
그렇다. 가게(shop)에서 물건을 사는 것을 쇼핑(shopping)이라고 하듯 몰링은 쇼핑과 영화 감상, 식사, 여흥 등 몰에서 이뤄지는 모든 활동을 총칭한다.
저자 언더힐은 미국의 쇼핑 전문가다. 물건 구매에 푹 빠진 ‘쇼퍼홀릭’이 아니라 쇼핑을 과학적으로 조사 분석하는 전문가다.
23개 언어로 번역 출간된 ‘쇼핑의 과학’에서 쇼핑을 다뤘던 저자는 이 책에서 몰링을 본격적으로 분석했다. 저자는 미국 대도시 근교의 몰을 직접 돌아다니며 몰의 구석구석을 관찰한 뒤 시시콜콜한 대목까지 그대로 책에 옮겼다.
우선 몰에 얽힌 역사와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1956년 미니애폴리스의 교외 지역에 미국 최초의 쇼핑센터가 문을 열었다. 의사들은 노인들에게 몰에 가서 걷기 운동을 하라고 권했다.
덥거나 추운 날씨를 피할 수 있는 최고의 운동 장소였기 때문이다. 몰에서 걷는 운동은 그렇게 급속히 미국 전역에 퍼져 나갔다. 1970년대는 몰의 전성기가 시작된 시기. 미국에선 매주 몇 개씩 새로운 몰이 생겼다.
저자는 몰의 매장 배치에 대한 비밀도 귀띔해 준다. 몰의 입구에서 가까운 곳은 가게 주인들이 꺼리는 곳이다. 고객들이 입구에 들어선 뒤 몇 초간은 어디로 갈지 생각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발걸음을 옮기기 때문이다.
여성 속옷 매장 근처에 기다리는 남자들을 위한 의자를 배치해 뒀다면 그 몰의 운영자는 대단히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여성이 남성과 데이트 도중 속옷을 사려고 할 경우, 여성 속옷 매장에 들어가길 꺼리는 남성을 위해 기다림의 공간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남녀의 몰링 행태에는 큰 차이가 있다. 몰에 들어서면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빨리 걷는다. 남자들은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들’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지만 여자들은 갈 곳을 분명히 알고 있다.
몰링이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미국에서는 다양한 신조어가 나왔다. 10, 20대 남자들은 미로처럼 얽힌 몰을 생쥐처럼 잘 찾아다닌다고 해서 ‘몰랫(mall rat)’으로 부르며, 몰 안에 있는 영화관과 카페를 즐겨 이용하는 젊은 여성들에게는 ‘몰리(mallie)’라는 이름이 붙었다.
몰링을 즐기는 사람은 ‘몰 고어(mall-goer)’라고 하고, 운동 삼아 몰을 둘러보는 사람들은 ‘몰 워커(mall walker)’로 불린다.
이 책의 일차 독자로는 유통업 종사자 또는 경영인, 경영학도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쇼핑이나 몰링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만하다.
저자의 글 솜씨와 현장 중계를 하는 식의 독특한 구성 덕분에 딱딱한 경영서적 느낌이 들지 않는다. 원제 ‘The call of the mall’.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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