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에는 3·1운동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역사가 남아 있는 유적지가 많다. 89돌을 맞은 3·1절에 자녀들과 함께 이 유적지들을 둘러보는 것도 뜻 깊은 일이다. 대표적 유적지 10곳을 소개한다.
3·1운동의 중심지 가운데 한 곳인 중앙고는 1일 오전 10시 반∼오후 5시 독립운동 유적지를 돌며 당시 만세운동을 재현하는 행사를 연다.
①중앙고=1919년 1월 말 재일 유학생 송계백이 중앙고보 숙직실에서 현상윤 송진우 선생 등에게 유학생들의 거사 계획을 알리고 ‘2·8 독립선언서’ 초안을 전달한 게 3·1운동의 계기가 됐다. 이 자리에는 ‘3·1운동 책원지’ 기념물이 세워져 있다.
②유심사 터=만해 한용운이 월간지 ‘유심’을 만든 곳. 만해는 이곳에서 천도교, 기독교 측과 만세운동을 하기로 합의했다.
③인촌 고택=3·1운동을 막전막후에서 지원한 인촌 김성수 선생의 고택. 종교계 대표들이 모여 거사를 논의했다.
④보성사 터=종로구 수송동 조계사 자리에 있던 보성사 인쇄소에서 기미독립선언서가 인쇄됐다.
⑤태화관 터=1919년 3월 1일 오후 2시경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지방에 있던 4명을 제외한 29명은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⑥탑골공원=비슷한 시간 종로구 탑골공원에는 학생, 시민 수만 명이 모인 가운데 한 명이 단상에 올라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⑦대한문=탑골공원에서 쏟아져 나온 만세 물결은 대한문 앞에서 연설회를 열었고 일부 시민은 고종황제의 영전(靈前)에 조의를 표하기도 했다.
⑧보신각=3월 3일, 세브란스병원에 근무하던 정태영은 종로 보신각에 몰래 들어가 종신에 ‘자유종’이라고 써 붙인 뒤 종을 울렸다.
⑨민영환 자결터=한말의 충신 민영환은 을사늑약의 부당함에 항거해 1905년 11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종로구 인사동의 선생 자결터에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⑩서대문 형무소=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인사들이 일본 경찰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던 곳이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