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3>신화학1-날것과 익힌 것

  • 입력 2008년 3월 5일 02시 58분


《“신화는 진정한 논리-수학적인 분석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순진하게 논리-수학 개념의 주변을 그리며 즐긴 것을 이러한 겸손한 공언을 고려해서라도 용서해 주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신화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데는 엄청난 어려움이 따른다…이 책의 내용이 대단히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돛을 올렸다고 자랑한 우리의 작업은 이 돛의 모서리에 불과할 뿐이다.”》

‘슬픈 열대’(1950년) ‘야생의 사고’(1962년) ‘구조인류학’(1958년)의 구조주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그는 신화의 체계를 분석한 방대한 분량의 이 고전을 남겼다.

구조주의 인류학은 인간 삶의 역사와 문화는 현상 뒤에 숨어 있는 근본적인 실체인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

레비스트로스는 1950년 신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뒤 20여 년간 신화 연구에 몰두했다. 신화를 현상과 독립된 체계로 생각하고 이 체계를 논리, 수학적으로 분석하려는 레비스트로스의 생각은 당시 획기적이자 낯선 도전이었다.

2005년 국내에 번역된 책은 ‘신화학’ 전체 4권 중 1권 ‘날것과 익힌 것’이다. 2권 ‘꿀에서 재로’, 3권 ‘식사예절의 기원’, 4권 ‘벌거벗은 인간’ 등은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난해한 이론뿐 아니라 수많은 외래어, 토착민 언어, 라틴어, 고전 프랑스어 등이 섞인 탓에 번역이 쉽지 않다.

‘신화학’은 남북아메리카의 인디언 신화를 무려 813개나 소개, 분석했다. 1권에는 그중 200개가 넘는 신화가 등장한다. 레비스트로스는 남아메리카 인디언 보로로족의 근친상간 신화를 분석한 뒤 이 신화를 이웃 부족의 신화와 비교 분석하면서 현상 뒤에 숨은 공통의 체계를 확인해 간다.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은 구조주의 언어학 없이 불가능했다. 그가 인류학의 영역에만 머문 채 언어학의 방법론을 연구하지 않았다면 세기의 고전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은 언어학과 인류학의 벽을 허물고 넘은 결과물이다.

구조주의 언어학은 언어의 의미와 역사를 통해 언어 원리를 설명하려는 전통적 언어학과 달리 인간과 완전히 독립된 언어 체계를 상정해 그 내재적 논리 시스템을 통해 언어를 분석했다. 언어의 시니피에(기의·記意)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문맥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의 신화 분석에서 이 방법론은 그대로 적용된다. 그는 신화를 구성하는 의미 있는 단위를 신화소로 나누고 이 신화소가 어떻게 결합하고 배열되는지에 따라 다양한 신화가 생겨난다고 봤다. “버려진 기둥, 깨진 가구, 창틀, 나무토막, 유리조각으로 새로운 책상이나 탁자를 만들었다면 창틀의 한 부분은 책상의 한 부분으로, 가구 조각은 책상 다리로 사용돼 책상이라는 체계(신화)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어렵다. 672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 질릴지 모른다. 그럼에도 천천히 책장을 넘기며 인디언 부족들의 같으면서도 다른 신화를 접하다 보면 레비스트로스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조금씩 알아차리는 즐거움이 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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