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독재시절 국내상황 국제사회에 알린 ‘1인 통신’

  • 입력 2008년 3월 5일 02시 58분


‘TK生’ 지명관 교수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출간

“미완의 역사로서 현대사는 자칫하면 쓰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크게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실로 복잡하고 중층적인 현대를 묘사한다는 것은 때로는 일방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 하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1970, 80년대 한국의 정치적 억압 상황을 비판하는 칼럼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일본 월간지 ‘세카이(世界)’에 연재해 국내 민주화운동을 세계에 알렸던 지명관(사진) 전 한림대 석좌교수가 칼럼 이름과 같은 제목의 책을 최근 출간했다. 이 책은 그 칼럼 모음을 넘어 당시 정치 언론 상황을 되새기고 한일 언론 보도 등을 비교했다.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은 1973∼1988년 15년 동안 세카이에 게재됐다. 당시 지 교수는 ‘TK生’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썼으며 2003년 ‘TK생’이 자신임을 공개했다.

이 ‘통신’은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 1980년 광주 5·18민주화운동 등을 해외에 알리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 오카모토 아쓰시(岡本厚) 세카이 편집장은 2003년 9월 한 대담에서 “당시 유럽 주한대사관들은 한국 실정을 파악하기 위해 세카이를 번역해 읽었다”고 밝혔다.

이 ‘통신’은 그만큼 국내 언론이 전하기 어려운 뉴스를 상세하게 알렸다. 수개월에 걸친 민주구국선언의 재판을 전했고, 1980년대 5·18민주화운동과 이후의 시국 항쟁도 ‘심야의 계엄령’ ‘광주 긴급 리포트’ ‘광기의 시대’ 등으로 해외에 알렸다.

저자는 이번에 출간한 책에서 ‘동아일보’ ‘아사히신문’의 보도를 통해 한국과 일본 언론, 망명자라는 각각 다를 수밖에 없었던 세 가지 시선을 함께 보여준다.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해 국내 언론은 철저하게 통제당한 반면, 아사히신문은 당시 상황을 분석해 한국 정보기관의 개입이 있었다고 밝혔다. 사설을 통해 한국 정부에 ‘한일 우호와 민주주의를 위해 양식 있는 사건 해결’을 요구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것이야말로 협력과 번영의 동북아시아로 나아가는 역사의 첫걸음”이라고 평했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3국 협력의 동아시아 시대에 한국은 단절과 초극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고민할 시점”이라며 “격동하고 고뇌했던 역사를 반추하고 폭넓은 시민적 역사의식을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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