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아악∼.”
객석에서 비명이 울려퍼진다. 그러나 싫지 않은 표정. 4일 오후 8시 반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뮤지컬 ‘파이브 코스 러브’ 공연 도중 무대 위 배우가 입에 물고 씹던 오이를 관객에게 뿜어냈고 이를 맞은 관객들은 비명을 질렀다.
이날 ‘오이 세례’를 받은 장은정(26·여) 씨는 “처음에는 피하게 됐는데 은근히 유쾌하고 나쁘지 않았다. 오이라는 게 배우와 관객이 함께하는 매개체라고 느껴진다”며 즐거워했다.
○ 피, 오이, 밀가루 반죽이 쏟아지는 3월의 무대
3월의 공연에서 무대와 가까운 좌석에 앉는다면 조심해야 한다. 공연에 한창 몰입되어 있는 중 무언가가 쏟아진다. 피, 오이, 밀가루 반죽, 물 등 종류도 다양하다.
18일 막을 올리는 호러 뮤지컬 ‘이블데드’는 관객에게 피를 뿌린다. 피가 나오는 대목은 2막이 끝날 무렵. 무대 세트 벽 곳곳에서, 그리고 배우들 몸에 숨기고 있던 피가 객석에 흩뿌려진다. 공연 1회에 쓰이는 피의 양은 5L. 물론 진짜 피는 아니다. 글리세린에 물과 식용색소를 섞어 만들었다.
21일 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레이디 맥베스’에서는 밀가루 반죽이 날아든다. 극 초반 맥베스 부인이 꿈을 꾸는 장면에서 배우들이 밀가루 반죽을 가지고 여러 가지 장난을 치다가 관객들에게 집어던진다. 한 회에 쓰이는 밀가루 양은 총 20kg이다.
‘파이브 코스 러브’에서는 배우가 관객을 향해 입안에 있던 오이를 뿜어내고, 세종문화회관 M극장에서 공연 중인 내한 코믹 패러디극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에서는 배우가 입에 머금고 있던 물을 분수처럼 관객에게 내뱉는다.
○ 더럽다고? 관객은 즐긴다!
‘이블데드’의 기획사 쇼팩은 관객들이 ‘피’를 맞는 좌석을 ‘스플래터존’이라고 이름 붙인 뒤 무대를 개조해 별도의 객석을 만들었다. 혹시 ‘피’를 맞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느낄 관객을 고려해 이 좌석에 대한 설명과 함께 가격도 R석보다 2만 원 싼 3만 원에 책정해 따로 티켓을 판매했다. 하지만 막상 티켓 판매가 시작되자 ‘스플래터존’부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 하루 만에 1, 2차 공연분 2400석이 완전 매진됐다.
뮤지컬 칼럼니스트 조용신 씨는 “공연은 본래 제의에서 시작된 만큼 관객은 엿보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수준의 체험과 참여를 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고 말했다.
‘레이디 맥베스’는 1998년 초연 이후 3차례 공연을 가졌지만 밀가루 반죽을 객석에 던지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태숙 연출은 “맥베스 부인의 꿈을 해학적인 분위기로 표현하는데 관객에게도 장난을 치면 어떨까 싶어 시도한 아이디어”라고 설명했다.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에 출연 중인 호주 배우 팀 슈워트(40)는 “물 뿌리는 장면은 호주에서 공연할 때는 없었던 장면인데 한국 관객에게는 대사로 유머를 전달하기가 어려워 일부러 슬랩스틱 코미디를 추가했다”고 밝혔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 ‘레이디 맥베스’는 예술의 전당 관객들이 뽑은 최고 연극
21일 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다시 막을 올리는 ‘레이디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재해석해 맥베스 부인에게 초점을 맞춘 심리극. 1998년 초연 후 1999년 서울연극제 작품상, 연출상, 연기상 등을 휩쓸었던 작품으로 2002년 이후 6년 만에 예술의 전당 개관 20주년 기념작으로 다시 선보인다. 지난해 예술의 전당이 관객과 연극인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최고의 연극 1위에 뽑혔던 작품.
맥베스 부인 역은 초연 멤버인 서주희가 맡았고, 그를 치료하며 덩컨 왕 살해 과정을 알아내는 주치의 역은 정동환이 출연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진흙과 밀가루를 이용한 다양한 상징물이 사용되고 정가와 타악기가 몽환적이고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만든다. 연출가 한태숙은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기존 객석을 버리고 무대 위에 300석 규모의 계단식 관객석을 만들었다. 4월 13일까지. 4만 원(수요일 3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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