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전쟁’ 보면 편성의 전쟁 보인다

  • 입력 2008년 3월 6일 03시 00분


■ 재방 횟수로 살펴본 케이블TV 경제학

《종일 소파에 앉아 TV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는 ‘재핑족들(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 사람들)’이 한 번쯤 궁금해할 법한 질문. 이리저리 돌려도 자꾸만 나오는 케이블 채널의 ‘단골 프로그램’은 무엇일까. 본보는 CNTV MBC드라마넷 MBC에브리원 SBS드라마플러스 KBS드라마 드라맥스 YTN스타 e채널 리얼TV GTV 등 지상파 프로그램을 자주 재방하는 케이블 채널 10개의 2월 셋째 주 편성표를 분석했다. 이를 토대로 케이블 편성 담당자들에게 재방 채널의 ‘편성의 법칙’을 들어봤다.》

○ 재방의 강자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조사 결과 KBS2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금 오후 11시 5분)이 일주일 동안 총 95시간 방영돼 다른 프로그램을 압도했다. ‘사랑과 전쟁’은 CNTV(28회) GTV(22회) 리얼TV(20회) 드라맥스(18회) KBS드라마(7회) 순으로 재방영됐다. 방영시간이 두 번째로 많았던 KBS2 ‘해피투게더’의 27시간보다 3배 이상 많다. 1999년 처음 방영한 ‘사랑과 전쟁’은 부부와 가족에 얽힌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재연 프로그램.

케이블 편성 담당자들은 ‘사랑과 전쟁’이 불륜, 이혼, 가족 문제 등 생활에 밀접한 일상사를 건드리기 때문에 시청자가 금세 몰입한다고 말한다. 이 프로그램이 19세 관람가가 된 뒤 새벽이나 늦은 밤 시간대로 편성 시간이 고정됐음에도 한 번 내보내면 평균 시청률은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CNTV 편성 담당 김혜영 대리는 “케이블 프로그램당 평균 시청률이 0.17%인데 ‘사랑과 전쟁’은 최소 0.2% 이상 나온다”고 말했다.

400회가 넘는 풍부한 에피소드도 부담 없이 편성할 수 있는 이유다. 드라마 전문채널 드라맥스의 유병탁 편성 PD는 “5개의 케이블 채널에서 ‘사랑과 전쟁’을 방영 중이지만 각각 다른 시리즈를 샀기 때문에 겹치기 방영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 형식의 재연 프로그램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여성TV, 리얼리티TV, 드라마TV 등 어느 채널에도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여성채널 GTV 김충회 편성 PD는 “연속 드라마와 달리 편마다 다른 에피소드가 방영되기 때문에 재핑하면서 보는 시청자들에게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분석했다.

○ 외화보다 국내 프로그램, 드라마보다 리얼리티

케이블TV 편성 담당자들은 외화보다 국내 프로그램을 선호하는 편이다. 최근 외화의 가격이 급상승했기 때문. 한 관계자는 “미드(미국 드라마) 열풍이 불자 대형 케이블 채널들이 인기 미드를 가져오려는 경쟁이 불붙으면서 가격이 올랐다”고 말했다. 편당 3000∼4000달러 하던 것이 현재는 1만 달러로 오른 실정이다. 자체 프로그램 제작이 어려운 PP(프로그램 공급사)들은 외화로 채널 이미지를 만들어가겠다는 편성 전략을 쓰지만 외화 가격이 오르면서 국내 지상파 프로그램의 재방에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국내 지상파 프로그램도 구매하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지상파가 자사 프로그램의 판매를 제한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일주일 동안 케이블의 여러 채널에서 115시간 ‘무한 재방’됐던 MBC ‘무한도전’은 MBC 계열사인 ‘MBC 에브리원’과 ‘MBC 드라마넷’ 등에서만 방영되고 있다. 이로 인해 PP들은 옛 프로그램의 재방을 대안으로 찾고 있다. 방송법에 따르면 한 프로그램이 다른 채널에서 방영할 수 있는 횟수는 2회로 제한돼 있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 ‘재방’ 케이블 채널의 위기

하나TV 메가TV 등 인터넷TV(IPTV)를 통해 원하는 프로그램을 골라 보는 매체 환경이 조성되면서 지상파나 케이블의 시간 개념이 무너지고 있다. 스포츠 생중계 등 일부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인터넷TV의 등장으로 프로그램 선택권이 방송사의 편성이 아니라 시청자의 손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특히 외화나 지상파 프로그램의 재방을 편성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는 케이블 채널들에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중앙대 성동규(신문방송학) 교수는 “케이블의 서바이벌 시대가 왔다”며 “케이블들은 채널 속성에 맞는 킬러 콘텐츠를 개발하지 않으면 존립 문제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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