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의&joy]2008서울국제마라톤 D-9

  • 입력 2008년 3월 7일 03시 00분


겨우내 흘렸던 피 땀 눈물

봄 잔칫날 환희로 받으리

《“서울 한복판에서 팬티만 입고 신나게 달리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서울 길에서 거의 발가벗고 달려도 대접받는 것은 마라톤대회밖에 없다. 동아마라톤은 길가의 사람들이 나를 달리게 만든다. 종로통을 신나게 달리고, 강남 길을 달리는 기분은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느낌이다. 사람들이 서로 먼저 가려다 발이 걸리고 팔이 걸린다. 그래도 얼굴 찡그리는 사람은 없다. 마라토너들은 오직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릴 뿐이다. 그것은 골인하는 것이다. 나만의 역사와 나만의 기록을 만드는 일이다.”

―이재학의 ‘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에서》

마라톤은 과정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기록으로만 남는다. 기록에 저마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녹아 있다. 자신의 기록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온갖 가슴 먹먹한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2008 서울국제마라톤이 9일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겨울 강호에 수많은 마스터스들이 이 대회를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한때는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내가 미쳤지, 왜 이런 힘든 일을 사서 하나.’ 어떤 때는 적당히 완주만 하려는 생각도 있었다. ‘대충 해도 풀코스 완주쯤이야.’ 하지만 그럴수록 새벽 운동화 끈을 조이며 자신을 다그치고 추운 길 위로 내몰았다. 누구나 내심 목표가 있다. 그 목표는 빠르든 늦든 모두 숭고하다. 중요한 것은 그 목표를 위해 바친 열정과 의지일 것이다. 다음은 그 열정의 흔적들이다.

○ 즐겁고 신나게 달리는 게 목표

▶이범일 씨 · 37세·171cm 60kg

2007년 동아마라톤 남자 30대 부문에서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풀코스 28번 완주에 최고 기록 2시간 32분 12초. 28번 모두 서브스리를 했고 단 한 번도 중도에 기권하지 않았다. 학창시절 운동선수로 활동한 적이 없는 순수 마니아. 2008 서울국제마라톤 목표는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평상시처럼 즐겁고 신나게 달리는 것이다. 기록을 앞당기려다가 생활의 리듬을 잃는 우는 범하고 싶지 않다. 절실한 목표를 세우지 않아서 올겨울 훈련도 여느 해와 크게 다르지 않다.

1월에 320∼330km 달렸을 정도다. 런너스클럽 회원으로 대부분 서울 남산에서 훈련한다. 2003년 봄 첫 풀코스 도전에서 2시간 50분 28초로 서브스리에 들었다. 2007 서울국제마라톤에서 마스터스 남자부문 12위.

“근육훈련이니 식이요법이니 하면서까지 마라톤 연습을 할 형편이 못 된다. 솔직히 직장생활 하는 사람으로서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무리하지 않고 담담하게 달리기를 즐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달린 뒤의 행복 맛보려 뜁니다

▶이우진 씨 · 28세·172cm 70kg

이라크 자이툰 부대 학사장교 출신. 이라크에서 군대생활 시절 하루 체력단련으로 8km씩 달린 게 계기였다. 2006년 가을부터 마라톤에 빠져 풀코스 4번을 완주했다. 최고 기록은 지난달 세운 2시간 39분 44초. 2008 서울국제마라톤 목표는 2시간 30분 이내 진입이다. 매일 아침 6시부터 1시간쯤 달리며 일주일에 한 번 장거리를 뛴다. 헬스클럽에서 근육 키우기도 꾸준히 한다. 1월 360km, 2월 250km 정도 뛰었다. 요즘 퇴근 후 술자리가 잦아 은근히 걱정된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테니스 선수로 활약했지만 썩 즐겁게 운동하진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마라톤은 나 자신이 즐거워서 하기 때문에 신이 난다. 난 자세도 엉망이고 호흡법이나 그런 것도 잘 모른다. 아침밥도 두세 그릇씩 뚝딱 해치운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힘으로 달리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맞다. 하지만 그게 뭐 대순가. 달리고 나면 몸이 그렇게 개운하고 행복할 수가 없다.”

○ 에너지 차오르는 3월, 힘 넘쳐요

▶유영대 씨 · 43세·168cm 58kg

2003년 첫 풀코스 도전에서 서브스리를 달성한 베테랑이다. 최고 기록은 지난해 달성한 2시간 49분 14초. 풀코스 27회 완주(서브스리 16회)에 한반도 종단 308km, 608km 사하라사막 완주 등 울트라 분야에서도 이름이 높다. 분당 검푸마라톤의 대표주자. 월 수 금요일엔 헬스장에서 근력을 키우고 화요일 언덕훈련, 목요일 인터벌 스피드훈련, 일요일 장거리 30∼40km를 달렸다. 1월 300km, 2월 350km 훈련.

2008 서울국제마라톤 목표는 자신의 최고 기록보다 딱 1분 앞선 2시간 48분대. 현재 자신의 신체적 한계가 ‘100m 24초 페이스’라는 게 그 이유다. 분당 검푸에선 102명(서브스리 7명)이 참가한다.

“3월 동아마라톤은 코스가 좋고 몸도 에너지가 차오를 때라 기록 내기에 안성맞춤이다. 코스 처음부터 끝까지 길가 시민들이 성원해 주는 것도 국내에선 이 대회뿐이다. 흥분하지 말고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속도가 몸에 익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발걸음을 세면서 달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가령 서브스리를 원한다면 ‘25초당(100m) 80걸음 정도’를 속으로 헤아리면서 달리면 된다.”

○ 마라톤은 버섯 키우기와 같지요

▶정남욱 씨 · 50세·166cm 63kg

지난해 3월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이봉주(38·삼성전자)가 우승하는 장면을 보고 엄청 감동 먹었다. 곧바로 ‘이봉주가 마라톤 나이로 환갑이라는데 어떻게 1km 남겨두고 젊은 케냐 선수를 따라잡고 역전 우승까지 할 수 있을까? 나라고 어디 못하라는 법 있겠나? 한번 달려보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 다음 달인 4월부터 달리기 시작해 가을에 풀코스를 처음 완주했다. 기록은 3시간 43분 13초.

2008 서울국제마라톤은 두 번째 풀코스 도전이다. 서브스리로 동아마라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게 목표다. 12월부터 마라톤 월간지 러닝라이프가 실시하는 프로그램에 따라 차근차근 준비했다. 연습 때 1km를 3분 55초∼4분대 페이스로 끊는다. 정 씨는 10년 전 직장생활 때려치우고 서울을 탈출해 버섯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 “마라톤은 버섯 키우는 것과 똑같다. 땀을 쏟은 만큼 나온다. 하루라도 게으름 피우면 금세 표가 난다.”

○ 봄엔 기록 단축, 가을엔 단풍길 달려요

▶허만옥 씨 · 41세·151cm 48kg

2004년 봄 우연히 10km 대회에 나가 난생처음으로 먼 거리를 달렸다. 너무 좋아 그 이후부터 달리기에 푹 빠졌다. 풀코스 31회 완주에 최고 기록 3시간 58분 52초.

2008 서울국제마라톤 목표는 3시간30분대 진입이다. 겨우내 마라톤 월간지 러닝라이프 프로그램에 따라 땀을 흘렸다. 연습 주무대는 서울 잠실보조경기장.

“서울국제마라톤은 서울 도심을 달리는 맛이 너무 좋고 오르내리막이 거의 없어 여성 마스터스들에게 편안하다. 난 봄엔 서울에서 기록을 단축하고 가을엔 단풍 황홀한 지방대회에 나간다.”

○ 숭례문 못 보니 동대문 더욱 사랑해야죠

▶김종대 씨 · 53세·167cm 60kg

4시간 내 진입(서브4)이 목표다. 최고 기록은 2006년 가을에 세운 4시간 14분 14초. 사업에 바빠 술자리가 잦은 게 불안하다. 2006년 2월에 달리기를 시작해 풀코스를 6번 완주했다. 서브스리의 보금자리 서울 남산에서 밤에 대부분 훈련한다.

“화 목 토 남산에서 오후 6시부터 20km씩 달린다. 가끔 30km를 뛰기도 한다. 남산은 내로라하는 베테랑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이들의 도움말이 힘이 되고 자극도 된다. 동아마라톤은 서울 도심을 달릴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 숭례문을 빙 돌아갈 땐 알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었는데 올해부턴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안타깝다. 아우라 할 수 있는 동대문도 지나게 되는데 더욱 사랑해줘야겠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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