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시작한 연극 ‘민자씨의 황금시대’(극본 김태형, 연출 김경익)에서다.
그는 1990년대 중반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연극 ‘늙은 창녀의 노래’에서 한물간 창녀 역으로 이름을 날렸다. 2005년 이 연극을 1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렸던 그는 지난해에도 ‘늙은 창녀’로 무대에 섰다. 왜 ‘그런’ 역만 하냐고 묻자 “그럼 예쁘고 잘나가는 30대 역을 맡겠어요?”라며 여유 있게 받았다. ▶dongA.com에 동영상》
연극‘민자씨의황금시대’카바레가수役 배우 양희경
○ 작품 마음에 ‘쏙’… 캐나다서 사업하는 아들 뒷바라지 그만두고 돌아왔죠
TV 드라마에서는 주로 약삭빠른 중년 여성 역을 맡지만 연극 무대에서는 반대다. 한 물가거나 빈곤하고 소외된 사람 역을 맡는다. 데뷔작인 ‘한씨 연대기’가 그랬고 대표작인 ‘늙은 창녀의 노래’도 그렇다. “일상을 다룬 이야기가 좋아요. 우리 주위에 늘 있을 수 있는데 숨겨진 이야기들, 실은 이런 게 더 드라마틱하거든요.”
‘민자씨의 황금시대’는 공연기획사 측이 양희경을 주인공으로 처음부터 점찍은 작품이다. 사업하는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러 캐나다에 가 있던 그에게 기획사 측은 e메일로 대본을 보냈고 작품이 마음에 들었던 그는 출연을 승낙했다.
주인공 ‘박민자’는 내리막길을 걷는 47세의 카바레 가수. 술과 폭력을 일삼는 남편으로부터 도망쳐 나왔다가 남편이 죽자 남겨둔 딸 ‘미아’에게 돌아가 눈칫밥을 먹는 엄마다. 그 와중에 첫사랑인 고향 오빠를 만나 임신하고 “전성기가 왔다”며 좋아하는 철 안 든 엄마다.
“대개 ‘엄마’ 하면 희생, 모성애 같은 단어를 생각하는데 박민자는 자기가 우선이에요. 내 사랑, 내 꿈이 중요하죠. 실제 중년 여성들한테 이런 면이 조금씩은 있거든요. 그게 마음에 들었어요”
그는 “현실적이지 못하고 경제관념 없는 것도 딱 나 같다”고 웃었다.
언니(가수 양희은) 못지않은 노래 실력으로 유명하다. 6년간 ‘넌센스’로 뮤지컬 무대에 서기도 했고, 종종 언니와 콘서트를 갖기도 한다.
“성악을 공부한 어머니 영향인가 봐요. 어렸을 때부터 언니와 나는 눈 뜨면 노래하기 시작했어요. 뭐든 듀엣으로 불렀고요.”
간혹 언니보다 낫다는 평도 나온다는 말에는 “‘착청’이에요. 하하. 언니랑 비슷하게 따라가니까 잘 부르는 것처럼 들리는 것”이라며 손을 내저었다.
○ 가족에게 상처받고 아파하는 분들 와서 보셨으면 좋겠어요
‘늙은 창녀의 노래’에서 10곡을 소화했던 그는 이번에는 카바레 무대에서 김추자의 ‘무인도’를 부른다. “한 곡이지만 기대치가 높아져서 부담스럽다”고 한다.
“원래도 무계획으로 살았고 이 작품 이후도 무계획”이라는 그는 “작품이 좋은 창작극이라면 한 장면 출연에도 OK”라며 연극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이번 작품과 기간이 겹친 TV 드라마 섭외도 고사했다. 바라는 것은 딱 하나, 창작극에 대한 관객의 관심이다.
“창작극이라서 잘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어요. 이 작품이 잘 되어야 대학로 기획자들이 창작 연극을 많이 올리죠.”
그는 “인간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게 가족이고 실은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가족”이라며 “가까운 곳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아파하고 그 상처를 보듬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 세상에선 니가 내 엄마해라” (민자) “진짜 엄마가 뭔지 제대로 보여줄게”(미아)
티격태격 싸우던 모녀는 결국 따뜻하게 화해한다. 4월 27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술마당 2관. 3만5000원. 02-762-9190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