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꽃을 좋아하지만/그것이 얼마만한 아픔 끝에/피어나는지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나도 이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것을 알았다.(…) 땀나듯 연둣빛 진액을 짜내던/그 지루한 인내를 지켜보고서야/비로소 그것을 알게 되었다.’(‘아픔’ 중에서)
김종길(82) 시인의 시에 대한 열정은 지치지 않는다. 여든을 넘긴 나이지만 4년 만의 새 시집 ‘해거름 이삭줍기’에는 연륜으로 조탁한 시 52편이 촘촘하게 실렸다. 시인은 노년의 눈을 통해서만 포착할 수 있는 장면들을 독자들에게 펼쳐 보인다.
‘짙푸른 잎새 사이로 내미는/샛노란 국화 송이들.(…) 대낮에도 새벽하늘에 별을 쳐다보듯/작은 설레임 속에 자주/눈길 머무는 그곳.’(‘국화 이야기’ 중에서)
쉽게 쓰인 듯한 시에서 은은한 향기가 난다. 평론가 유종호 씨가 “과부족이 없는 은은한 여운과 원숙한 고담의 경지를 지키고 있다”고 평한 대로다.
‘나는 요즈음 아침마다/경이와 마주치고 있다//이른 아침 뜰에 나서면/창밖 화단의 장미 포기엔/하루가 다르게 꽃망울이 영글고,//산책길 길가 소나무엔/새순이 손에 잡힐 듯/쑥쑥 자라고 있다’(‘경이로운 나날’ 중에서)
경이로울 것 없는 시대에, 신기할 것 없는 나이인데, 시인을 놀라게 하는 것은 장미꽃망울과 소나무 새순이다. 항상 그 자리에 있었으되 숨 가쁘게 살아가느라 보이지 않았던 것이, 이제야 보인다. 그 경이로움을 보여주고 싶고 알려주고 싶은 시인의 의지가 새 시집에 오롯이 담겼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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