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시장은 예술의 생산과 소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과거와 달리 예술가들은 익명의 구매자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작품을 만들고, 그 작품은 시장을 통해 유통된다. 이제 많은 예술품이 산업경제의 대량생산 모델을 좇아 제작되고 판매되며 유행이 끝난 후에는 시장에서 사라진다. 상업화(商業畵)다. 일부 비판적 이론가는 상업화가 예술의 타락과 소외를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따르면 예술산업은 창작품을 천박한 상품으로 만들어버린다. 예컨대 완전무결하게 구성된 색채들이 흔해빠진 벽지의 무늬로 응용돼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시장의 활성화가 사회·경제적으로 여러 가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예술품에 대한 접근성이 증가하면서 잠재적 예술 소비자가 크게 늘어났다. 또 예술시장의 팽창과 활성화는 재능 있는 젊은이들을 예술계로 유인하고 안정된 창작활동을 보장해 예술 발전에 기여한다. 예전에 비해 더 많은 신진 예술가가 경제적으로 훨씬 독립적인 상황에서 예술 활동에 전념할 수 있다.(후략)
<해설>
“작품 타락 부채질” 우려에
“창작 활동 활성화” 반론도
위의 글은 고려대가 2007학년도 정시 논술고사에서 ‘예술의 효용’을 주제로 제시한 글 가운데 하나다. 이 글은 ‘예술이란 무엇인가?’(미카엘 하우스켈러), ‘예술경제란 무엇인가’(유진룡 외)라는 책에서 발췌해 재구성한 것이다.
공연 예술을 포함한 모든 창작활동은 창작자들의 상상력과 감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창작자들은 그저 예술이 좋아서 작품활동을 하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자신이 얼마나 만족하느냐에 관심을 둘 뿐 대체로 남의 평가에 무관심하다. 이것이 예술은 경제와 무관하다고 인식돼 온 근거라 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문화예술활동은 여러 가지 형태로 시장에 의존한다. 창작에 필요한 각종 재료는 시장에서 거래된다. 가령 미술가들은 물감과 종이를 시장에서 사야 한다. 새로 창작된 미술작품은 전시회를 거쳐 판매되고 기존의 작품은 경매시장을 통해 거래된다.
대중예술이나 문화산업은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훨씬 심하다. 이들 작품은 기본적으로 대규모의 자본이 투입되며 투자자들에게 소정의 수입을 보장해줘야 하므로 소비자의 기호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예술에 대해 경제학적 접근을 시도하는 분야를 문화경제학(cultural economics)이라 한다. 문화경제학에서 다루는 주제는 다양하다. 참가 조사나 관객 조사를 통해 예술 수요자의 특성과 수요 결정 요인을 밝히고 공연예술단의 비용과 수익에 관한 자료를 분석해 공연예술 공급의 특성을 찾아낸다. 때로 문화경제학이 예술의 특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 하고 ‘예술 없는 예술정책’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문화경제학을 통해 현대 문화예술이 직면한 다양한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예술 지원의 기반을 마련하고 예술정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한경동 한국외국어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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