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인상은 실망스럽지만 손으로 잡아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부드러운 촉감과 묵직한 무게감 덕분에 손에 착 달라붙는 듯하다.
왜 옥소사는 이런 제품을 만들었을까. 모양이나 내구성을 고려한다면 단단한 나무나 플라스틱이 손잡이로서는 좋은데 말이다.
옥소 사장의 아내는 류머티즘을 앓고 있었다. 이 때문에 주방에서 요리할 때 작은 기구들을 다루기가 쉽지 않았다. 늘 안타깝게 생각하던 남편은 아내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쓸 수 있는 도구는 없을까 고민하다가 ‘스마트디자인’사에 의뢰했다.
디자인컨설팅회사인 스마트디자인에서는 요리과정을 관찰하면서 손의 크기에 따라서 각자 다른 방법으로 손잡이를 잡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 대부분 사람들이 작은 손잡이보다는 상당히 큰 손잡이가 사용하기에 편리하다고 느낀다는 점도 발견했다.
감자를 깎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다. 많은 양의 감자를 깎는다면 거의 노동에 가깝다. 이럴 때 감자깎이를 만드는 회사에서는 그저 도구의 기능을 생각해 칼날이 잘 드는지에만 신경 쓰게 마련이다.
하지만 사용하면서 가장 힘이 많이 들어가는 부분은 손잡이다. 기존의 플라스틱이나 나무 제품들은 손잡이가 딱딱해서 조금만 사용해도 손과 손목에 무리가 간다. 옥소사는 이 제품을 위해 ‘멤브레인’ 이라는 부드럽고 탄성이 좋은 고무소재 재질을 써 두툼하게 만들었다.
손에 힘이 부족하거나 손목을 자유롭게 쓰기 어려운 사람도 편리하게 다룰 수 있다. 장시간 사용해도 피로가 덜하며 촉감이 좋고 미끄럽지 않아 다른 어떤 도구들보다 편리하다.
이 제품은 파격적인 인기를 얻었다. 손이 불편한 주부들 외에 많은 평범한 사람에게도 편리했기 때문이다. 아내를 위하는 절실한 고민이 대중을 위한 훌륭한 디자인 제품을 탄생시킨 계기가 됐다.
이 디자인 개념을 적용한 다양한 라인의 주방도구들이 ‘굿그립스’라는 브랜드로 선보여 많은 주부로부터 인기를 누리게 된다. 유명 백화점에 독자적인 제품 전시 공간을 확보하면서 회사 매출도 크게 늘어났다.
굿그립스의 디자인 속에는 세심한 관찰과 사용자를 위한 배려가 들어 있다. 명품은 보기에 화려한 것만은 아니다. 평범해 보이지만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고 아내를 생각하는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는 굿그립스의 디자인은 진정한 명품이다.
박영춘 삼성디자인학교(SADI) 제품디자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