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시가 유명한데요….”(기자)
“그 시를 잘 모릅니다. 꼭 자세히 알려주세요. 제게 나이 드는 것은 비관적인 일이 아닙니다. 30대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의 힘으로 능숙하게 펼쳐나갈 수 있는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라고 믿고 있어요.”(무라지 가오리)
서른 살의 클래식 기타리스트 무라지 가오리. 기타를 들고 숲 속을 배회하는 신화 속 님프처럼 그녀는 여전히 예쁘다. 새로 나온 ‘비바! 로드리고’(데카) 음반 표지에 붉은색 옷을 입고 누워 있는 그녀의 사진에서도 집시의 정열보다는 봄 처녀의 순수함이 느껴진다. 세 살 때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신동 기타리스트가 맞는 서른 살의 느낌은 무엇일까.
일본 클래식 기타리스트 무라지 가오리가 23일 오후 2시 반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3년 만에 내한공연을 갖는다. 그는 디토 체임버오케스트라(지휘 혼나 데쓰지)와 함께 스페인 기타의 거장 호아킨 로드리고의 ‘아란후에스 협주곡’과 ‘어느 귀인을 위한 환상곡’을 연주한다.
그는 로드리고의 마지막 제자로도 유명하다. e메일을 통해 1997년 스페인에서 로드리고를 만났던 기억을 물었다.
“97세의 고령인 데다 감기가 든 상태였는데도 로드리고는 마드리드 자택에서 감색 양복에 빨간 넥타이까지 매고 저를 맞아주셨어요. 피아노 앞에 앉아 계시는 그의 앞에서 ‘밀밭에서’와 ‘고풍스러운 티엔트’를 연주했지요. 저는 10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온 인간의 존재감에 압도당했고, 위대한 작곡가의 인생의 45분간을 함께했다는 사실에 감동했지요.”
2002년 로드리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영상물 ‘콘트라스트’에는 무라지 가오리가 호아킨 로드리고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아란후에스 협주곡’을 협연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그는 “촬영하는 3개월 동안 아란후에스 궁전과 산사나레스 성, 페드라사 등 스페인 중앙 고원지대의 아름다운 풍광에 압도당했다”며 “로드리고가 ‘아란후에스 협주곡’에 담았던 스페인의 역사와 집시들의 삶이 제 피부로도 느껴졌던 체험”이라고 소개했다.
무라지 가오리는 15세에 데뷔 앨범 ‘에스프레시보’를 발매한 이후 고전 모음집 ‘그린 슬리브스’, 로드리고의 작품을 모은 ‘파스토랄레’, 바로크 음악을 모은 ‘신포니아’, 크로스오버 음반인 ‘카바티나’ 등 발표하는 앨범마다 일본 클래식 차트 1위를 차지해왔다. ‘아란후에스 협주곡’은 7년 전에 이은 두 번째 녹음.
그는 “아란후에스 협주곡은 난곡이라 첫 녹음 때는 실수 없이 연주하는 것만도 꽤 힘들었지만 이번엔 오케스트라의 울림까지 정확히 들렸고, 불필요한 힘을 뺄 수 있었다”며 “완벽함보다는 나 자신다운 음악을 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바이올린이나 첼로는 활로 연주하는 반면에 기타는 손가락의 지문(指紋)이 있는 부분으로 현을 켭니다. 소리가 사람의 컨디션에 좌우될 정도로 섬세한 악기이지만, 어떤 악기도 따라올 수 없는 다양한 음색과 표현력으로 ‘작은 오케스트라’로 불릴 정도로 매력적인 악기지요.” 3만∼8만 원. 02-318-4302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