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장에서 명품이라면 무조건 통한다고? 그렇다면 이탈리아 디자이너 프란체스코 스말토가 만든 프랑스 남성 정장 브랜드 ‘스말토’는 말 그대로 ‘스타일 구겼다’.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이 즐겨 입던 양복, 프랑스 축구대표팀 후원회사…. ‘명품’ 소리 듣던 40년 전통의 브랜드가 2003년 국내에 진출해 3년 만에 사업을 접어야 했으니 이 굴욕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3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새롭게 가게를 열고 국내 시장 재도전에 나선 이 브랜드의 뒤편에는 3년 전 부임한 전문경영인 출신 CEO 필리프 드 빌모랑(58·사진)이 있다. 한국에 다시 진출한 기념으로 13일 한국을 찾았다.
“‘재도전’이라는 표현보다 우리에겐 ‘갈 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과거와는 달리 지금의 한국 고객들은 ‘럭셔리’해졌고 옷에 대해 즐길 줄 알죠. 패션에 관심이 많은 30대 아시아 남성들을 타깃으로 했습니다. 특히 한국을 아시아 진출 교두보로 삼았습니다.”
과거 패인(敗因)은 국내 소비자들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은 것에서 시작됐다. 국내 라이선스용으로 ‘스말토’ 딱지만 붙여 값싸게 내놨는데 명품의 질을 중시하는 고객들의 생각과는 어긋날 수밖에 없었다. 새 전략은 ‘인터내셔널 라인’의 강화다. 한국 남성을 위해 따로 만들지 않고 유럽스타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그는 “명품 양복의 첫째 조건은 편안함”이라며 “좋은 옷일수록 평상시에도 입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옷 무게만 가벼워진 것은 아니다. 색, 옷의 라인 등 브랜드 전반이 경쾌해진 데에는 그가 직접 뽑은 한국 출신 여성 수석디자이너 박윤경(31) 씨의 공이 크다. 7년 전 ‘스말토’에 입사해 지난해 수석 디자이너로 발탁된 데에는 남성 옷에 여성의 섬세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많은 사람이 걱정했죠. 한국인, 그리고 여자라는 것이 모두 ‘핸디캡’으로 작용했을지 몰라요. 하지만 그는 40년 전통의 양복에 많은 걸 부여했죠.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살려 색도 다양하게 입히고 라인도 넣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중재인’이라고 표현했다. “만약 실패한다면 내일 아침 바로 회사를 떠날 각오가 돼 있다”며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5년 내 국내 매장을 10개 이상 늘릴 것”이라는 그의 목표 앞에 “또 한국에서 실패하면…”이라며 조심스레 물어봤다. “다시 시작하면 되죠. 한국의 30대 남성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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