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이 느껴져요. 대구 관객은 발동이 느리게 걸리는데 서울 관객은 금방 ‘오픈’하데요. 대구(관객)는 박수도 턱∼턱∼ 치는데 서울(관객)은 짝짝짝∼ 쳐주고… 오늘 공연도 아주 난리가 났었어요.”
김현규(63·사진) 씨의 목소리는 흥분에 차 있었다. 25일 오후 10시 서울 종로구 혜화동 ‘나무와물’ 극장에서 막 공연을 끝내고 나오는 길이었다. 40여 년 연기인생 내내 바라다보기만 했던 ‘대학로 무대’. 환갑이 넘어서야 ‘꿈의 무대’에 오른 그는 이제 자신감이 생긴 듯했다.
그가 출연 중인 창작뮤지컬 ‘만화방 미숙이’는 대구 출신 극작가, 작곡가, 연출가, 배우 등 대구 연극인들이 모여 만든 ‘메이드 인 대구’ 작품이다. 이 뮤지컬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3월 초까지 218회 공연했으며 2만5000여 명이 관람했다. 대구 뮤지컬 사상 최장기 및 최다 관객 기록이다. 이 공연은 13일 서울 대학로 소극장 ‘나무와물’에서 막을 올려 평일에도 120석의 객석을 70% 넘게 채우고 있다. 주말에는 매진이다.
김 씨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만화방 주인 ‘장봉구’ 역을 맡았다. 그는 대구 초연부터 25일 서울 공연까지 모두 233회 무대에 빠지지 않고 올랐다.
그는 6·25전쟁 때 우연히 본 연극에 매료돼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전쟁 때 국립극단이 대구로 피란 와 있었는데 은행 간부였던 아버지가 공연을 좋아해 배우들 뒷바라지 하셨어요. 황해, 백성희 선생님 같은 분들을 뵙게 되며 관심을 갖게 됐죠.”
김 씨는 경북대 재학 시절에 극단 ‘신무대’를 만들어 연극을 시작했다. “아주 열악했어요. 공연장이 없어 천장이 높은 예식장이나 YMCA 강당을 빌려 공연했고 연습은 고등학교 야구장에서 했죠. 운동장에 주전자로 물을 부어 실제 무대 크기로 만들고 조명은 가로등을 끌어다가 쓰고. 옛날이라고? 1980년대 초반까지도 그랬는걸요. 하하”
지방 배우로서 서러웠던 기억은 1992년 전국연극제(매년 지역 대표작들이 경연한다)다. 그가 주연한 ‘박덩이 로맨스’가 대구 대표작으로 출품됐으나 예선에서 탈락했다. “사투리를 못 알아듣겠다고 하데요. 관객도 심사위원도 아무도 못 알아듣는데 무슨 연극이냐고….”
3년 뒤 그는 자신이 주인공을 맡은 연극 ‘뜨거운 땅’으로 전국연극제에 다시 도전해 남자연기상을 받았다. 이때는 사투리를 완화했다고 한다.
“대구 뮤지컬이 서울로 진출한 것은 처음이죠. 요즘은 서울 대형 공연들이 대구로 많이 내려옵니다. 우리는 거꾸로 서울에서 꼭 성공하고 싶어요.”
김 씨는 갑자기 주먹으로 테이블을 ‘탕’ 치더니 인터뷰 내내 쓰던 표준말 대신 투박한 대구 사투리로 힘줘 말했다. “자신 있슴더! ‘만화방 미숙이’로 내 공연판을 한 번 바꿔 볼랍니더.”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 뮤지컬 ‘만화방 미숙이’는 시대의 흐름에 밀려 빚더미에 오른 만화방이 사채업자에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이를 구하려는 육군 상사 출신 만화방 주인 장봉구와 이를 지키려는 삼남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만화방을 배경으로 김밥장사 할머니, 만화가 지망생 등 평범한 사람의 삶을 따뜻하게 그렸다. 4월 27일까지. 02-745-2124. 2만∼3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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