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검사만으로 신원 확인한 첫 사례
평생 수절 팔순부인 “그가 살아온듯” 감격
“나로서도 어찌 부모님과 동기간과 처자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마는… 나라에 바친 이내 몸이오, 다만 한시바삐 삼팔선을 부수고….’ 58년 전 물밀듯이 남침한 적에 맞서다 전사한 국군용사가 형에게 쓴 편지는 누렇게 바랬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목숨 바쳐 조국을 지키겠다는 결연함은 생생히 묻어났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해 2월 충북 영동군에서 발굴한 국군 전사자의 신원이 강태수 일병으로 확인됐다고 26일 밝혔다.
강 일병의 유해는 인식표를 찾지 못해 신원 확인이 힘들었지만 지난해 유족 혈액 채취 행사 때 확보한 아들 강준석(62·서울 강동구 둔촌동) 씨의 유전자(DNA) 샘플과 대조한 결과 99.9%가 일치해 신원이 확인됐다.
박신한(육군 대령) 유해발굴감식단장은 “강 일병의 경우 신원 확인을 위한 단서가 전혀 없는 가운데 DNA 검사만으로 신원을 확인하고 유족을 찾은 첫 사례”라고 말했다.
강 일병의 유해는 총탄 자국이 선명한 철제 수통, 손목시계 등과 함께 발굴돼 당시 치열한 전장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국방부의 전투 및 병적기록에 따르면 강 일병은 1949년 1월에 입대해 6·25전쟁이 터지자 의정부와 한강 방어선 전투에 참가했다가 1950년 7월 18∼21일 영동군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17세 때 강 일병과 결혼한 뒤 58년간 홀로 지내 온 부인 민정희(82) 씨는 “너무나 많은 세월이 흘러 (유해를 찾는 일은) 기대도 못한 채 한으로 남았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남편이 살아온 것만 같다”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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