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 떠돌던 호국영혼, 58년 만에 가족품으로

  • 입력 2008년 3월 27일 03시 02분


총알 관통한 물통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가 26일 유전자 검사를 통해 58년 만에 신원과 유족이 확인된 국군 전사자 강태수 일병의 유품을 공개하고 있다.연합뉴스
총알 관통한 물통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가 26일 유전자 검사를 통해 58년 만에 신원과 유족이 확인된 국군 전사자 강태수 일병의 유품을 공개하고 있다.연합뉴스
“나라에 바친 이내 몸…” 형에게 마지막 편지

유전자 검사만으로 신원 확인한 첫 사례

평생 수절 팔순부인 “그가 살아온듯” 감격

“나로서도 어찌 부모님과 동기간과 처자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마는… 나라에 바친 이내 몸이오, 다만 한시바삐 삼팔선을 부수고….’ 58년 전 물밀듯이 남침한 적에 맞서다 전사한 국군용사가 형에게 쓴 편지는 누렇게 바랬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목숨 바쳐 조국을 지키겠다는 결연함은 생생히 묻어났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해 2월 충북 영동군에서 발굴한 국군 전사자의 신원이 강태수 일병으로 확인됐다고 26일 밝혔다.

강 일병의 유해는 인식표를 찾지 못해 신원 확인이 힘들었지만 지난해 유족 혈액 채취 행사 때 확보한 아들 강준석(62·서울 강동구 둔촌동) 씨의 유전자(DNA) 샘플과 대조한 결과 99.9%가 일치해 신원이 확인됐다.

박신한(육군 대령) 유해발굴감식단장은 “강 일병의 경우 신원 확인을 위한 단서가 전혀 없는 가운데 DNA 검사만으로 신원을 확인하고 유족을 찾은 첫 사례”라고 말했다.

강 일병의 유해는 총탄 자국이 선명한 철제 수통, 손목시계 등과 함께 발굴돼 당시 치열한 전장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국방부의 전투 및 병적기록에 따르면 강 일병은 1949년 1월에 입대해 6·25전쟁이 터지자 의정부와 한강 방어선 전투에 참가했다가 1950년 7월 18∼21일 영동군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17세 때 강 일병과 결혼한 뒤 58년간 홀로 지내 온 부인 민정희(82) 씨는 “너무나 많은 세월이 흘러 (유해를 찾는 일은) 기대도 못한 채 한으로 남았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남편이 살아온 것만 같다”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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