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옹녀는 날건달 변강쇠 추스른 억척녀?

  • 입력 2008년 4월 5일 02시 55분


◇우리 고전 캐릭터의 모든 것(전 4권)/서대석 엮음/각 370쪽 내외·각 1만5000원·휴머니스트

우리 고전에 등장하는 캐릭터 85명을 재해석한 책이다. 캐릭터는 서사문학에서 형상화된 개성적 인물로, 저마다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동안 우리 고전의 캐릭터는 평면적인 존재라며 낮게 평가돼 왔다. 하지만 저자들은 “고전 캐릭터를 새롭게 해석하면 고뇌와 결단을 거듭하는 생동감 있는 인물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춘향전’의 춘향은 봉건적 열녀 관념에 사로잡힌 캐릭터가 아니라 시련을 견디며 이타적(利他的) 사랑과 인간 해방의 화신으로 거듭난 인물이라는 것.

이 책은 ‘장화홍련전’ ‘바리공주’ ‘사씨남정기’ ‘삼국유사’ 등 판소리 설화 소설 야사를 넘나들며 고전 캐릭터를 다양하게 분석했다. 서대석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정년퇴임을 기념해 기획된 이 저작은 고전문학 분야의 중진, 소장, 신진 연구자 85명이 참여했다.

1권은 “이것이 고전 캐릭터”라고 할 만한 캐릭터들을 모았다. 소설 ‘채봉감별곡’의 여주인공 채봉이 대표적이다. 돈이 큰 힘을 발휘한 구한말, 채봉의 아버지는 딸을 재상 집안의 첩으로 앉히고 벼슬을 사려 한다. 채봉은 비정한 아버지를 거역하고 사랑을 찾아 떠났고 이 과정에서 기생까지 돼야 했다. ‘순종적 효녀’의 모습을 박차 버린 채봉의 선택은 시대적 편견에 맞서는 새로운 여성상을 잘 보여준다.

2권은 왜곡된 캐릭터의 참모습을 조명했다. ‘변강쇠전’의 옹녀는 세간에 음녀의 전형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출헌 부산대 교수는 옹녀에게서 하층 여성의 기구한 인생 역정을 발견한다. 옹녀는 욕망을 감추거나 억누르지 않았지만 노름질, 싸움질하는 변강쇠를 달래 어떻게든 살아보려 했고 늘 살림살이를 걱정한 인물이었다.

3권은 기개와 기지, 열정이 유달리 강한 고전 캐릭터를 분석했다. 연암 박지원의 ‘민옹전’에 나오는 민옹은 참으로 독특하다. 식욕 부진과 불면증을 앓는 사람에게 “집이 가난한데 밥을 먹지 못하니 돈이 남아돌고, 잠을 못 잔다니 밤까지 겸해 살아 남보다 갑절 산다고” 눙친 뒤 유쾌한 방법으로 우울증을 치료하는 민옹의 모습에서 이민희 아주대 교수는 탁월한 심리치료사의 모습을 발견한다.

4권은 오늘날 문학과 대중문화에서 창조적 재해석이 가능한 캐릭터를 모았다. ‘전우치전’의 전우치는 뤼팽이나 스파이더맨에 비견할 만하다. 전우치는 도술을 부리면서 권력자들을 골탕 먹이고 가난하고 힘없는 계층을 돕는다. 그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약자의 눈물이다. 뛰어난 도술 실력에 능청스러운 성격이 매력적이다. 김탁환 KAIST 교수는 도술로 세상의 불의와 맞서 싸우려고 한 사나이의 삶을 드라마로 재구성하면 좋겠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