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유학 10년 만에 모든 성악가의 꿈인 ‘라 스칼라’의 무대를 밟았습니다. 2000여 명의 관객 앞에 섰을 때 처음엔 숨이 멎을 듯했지요.”
테너 이정원(40·사진) 씨가 3일 밤(현지 시간) 한국인 테너로는 처음으로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라 스칼라 무대에 섰다. 230년 역사의 라 스칼라는 베르디의 ‘오델로’와 ‘나부코’ 등이 초연된 유서 깊은 오페라극장. 그는 이날 ‘맥베스’에게 처자식을 잃은 스코틀랜드 귀족 막두프 역을 맡았다. 라 스칼라에서는 극의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 공연 도중 환호성을 자제하는 것이 관례. 그러나 4막에서 이 씨가 비통함과 애절함을 가득 담은 아리아 ‘오, 내 아들아’를 부르자 객석에서는 뜨거운 박수와 ‘브라보’가 터져 나왔다.
공연 후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 씨는 “이탈리아 청중은 다혈질이어서 노래가 마음에 안 들면 화를 내기도 하는데 제 노래가 끝난 후 갈채와 환호성이 나오는 것을 보고 만감이 교차하고 눈물까지 났다”고 라 스칼라 데뷔 무대의 감격을 전했다.
이날 공연에는 테너 김기현(35), 베이스 박종민(22) 씨가 각각 말콤 역과 의사 역을 맡아 무대에 서는 등 한국인 성악가가 3명이나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이 씨는 “라 스칼라에 한국인 3명이 한꺼번에 출연한 것은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라 스칼라 무대를 밟은 한국인 성악가는 소프라노 조수미와 홍혜경, 바리톤 김동규, 베이스 전승현 등 네 명뿐. 이 씨는 4년 전 라 스칼라 무대에 서기 위해 오디션에 도전했다가 떨어졌지만 재도전 끝에 이번에 꿈을 이뤘다.
“라 스칼라는 이탈리아의 자존심입니다. 리허설 때 스태프들이 제 이탈리아어 발음과 연기 하나하나 시비를 걸었습니다. 처음엔 텃세라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많은 것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는 11, 18일 라 스칼라에서 두 차례 더 맥베스를 공연한 후 6월 프랑스 아비뇽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벨리니의 ‘노르마’에 출연한다. 이 씨는 5월 10일 경기 고양시 아람누리 개관 1주년 기념 예술제에서 소프라노 안드레아 로스트와 함께 오프닝 콘서트를 할 예정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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