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22>과학으로 생각한다

  • 입력 2008년 4월 7일 02시 51분


《“1900년에 멘델의 법칙이 재발견된 이래 지금까지 숨 가쁘게 발전한 분자생물학은 사람들에게 프랑켄슈타인의 공포를 상기시킬 정도로 질주하고 있다. 생명의 신비를 규명하기 위해 어떤 조작과 실험도 서슴지 않았던 시기를 지나 이제 우리는 과학 연구의 어디까지가 허용돼야 하며, 또 얼마나 빠른 속도로 과학이 발전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이 책은 과학과 과학자들을 이야기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 책을 과학서적으로 분류하는 것은 곤란하다. 과학의 발달에 따른 철학적 사유의 변천을 고찰하는 것을 비롯해 과학이 인간의 사상과 문화, 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동시에 짚고 있기 때문이다.

4명의 저자는 과학사 또는 과학철학을 전공했다. 저자들은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영역을 넘나들며 과학이 지니는 인문학적, 사회적 함의를 살폈다. 이른바 통섭(統攝)적 탐구의 결과물인 셈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오래전 과학자들은 과학자이면서 철학자였고, 사회 경제에도 관심을 가졌다. 과학적 연구에만 매진한 과학자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연구 결과 역시 과학의 경계를 넘는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진화를 연구한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론은 생물학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킨 이론이었다. 이 이론은 ‘의미와 목적이 없는 물질 영역’과 ‘의미, 목적이 있는 생명의 영역’을 통합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더 나아가 다윈 스스로 “심리학은 새로운 토대 위에 세워질 것”이라고 예견한 대로 ‘진화 심리학’ ‘진화 철학’ ‘진화 경제학’ 같은 새로운 학문 분야가 탄생했다.

1900년대 초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은 ‘아무리 복잡한 일도 잘게 쪼개면 그 각각은 매우 간단한 일로 만들 수 있다’는 명제를 제시했다. 튜링은 이런 믿음을 근거로 인간의 지능과 동등한 능력을 기계가 갖게 되는 시기가 조만간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의 예견처럼 사칙연산을 기본으로 하는 컴퓨터는 오늘날 건물 설계, 수학 증명 같은 고도의 지적 작업까지 해내고 있다.

20세기 후반 등장한 분자생물학은 생명의 본질이 유전자에 존재한다고 봤고, 생명 그 자체는 유전자에 각인된 정보의 총합이라고 정의했다. 이를 통해 분자생물학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의 방향을 바꿔 버렸고, 철학자들은 생명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리기 시작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이자 과학철학자였던 에른스트 마흐는 “경험적으로 검증 불가능한 이론적 언술을 과학에서 수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경험과 관찰을 강조한 마흐의 생각은 논리 실증주의 과학철학을 출범시킨 빈 모임의 구성원들은 물론 조지프 슘페터 같은 경제학자, 막스 아들러 같은 사회과학자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저자들은 “과학과 사회 각 분야 사이에는 모세혈관과 같은 소통의 관(管)이 존재하는데 그 관에서 이뤄지는 소통의 흐름이 일방적이거나 막히면 사회가 병들고 문제가 생긴다”고 강조하고 대표적인 사례로 우생학을 들었다. 과학이 사회의 요구에 무조건적으로 순응하거나 사회가 과학의 힘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결과 ‘인종 청소’라는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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