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계약 해지라니... 그럼 방 빼라는 거?’(정순왕후)
“계약기간 남았는데 나가라카는 거니까 복비와 이사비는 우리가 대준다.”(영조)
“아이고오 전하, 소접을 나가라고 하니 어느 곳으로 가오리까. 이 엄동설한에”(정순왕후)
신문에 실리는 4컷 만화처럼 드라마의 정지 장면을 연결한 패러디 작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긴 호흡의 드라마를 간결하고 속시원하게 긁어주기 때문이다.
드라마 시청자 게시판에 ‘미니드라툰’ ‘이미지공작소’ 등의 코너에서는 누구나 작가이자 PD가 될 수 있다. 1∼4컷 정지 영상을 선택하고 말 풍선을 넣으면 새로운 작품이 된다. 일부 전문가 수준의 누리꾼은 아예 화면을 직접 캡처해 20컷 이상의 자작 드라마를 만들기도 한다. 시청자(소비자)가 곧 생산자가 되는 프로슈머(prosumer)가 드라마에도 퍼진 것이다. ‘자작(自作) 드라마’라고 부르는 이 새로운 콘텐츠는 요즘 드라마 애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자작드라마의 인기는 곧 해당 드라마의 인기의 척도가 된다. 대표적인 자작드라마 대상은 MBC 월화사극 ‘이산’과 KBS 2TV ‘대왕세종’, 종영한 SBS ‘왕과 나’ 등 주로 등장인물이 많은 사극. 최근에는 ‘온에어’에서도 자작 드라마의 활동을 볼 수 있다.
몇몇 자작드라마 작가들은 드라마 작가 부럽지 않은 인기를 얻는다. MBC의 웹을 총괄하는 iMBC는 아예 자작드라마 작가와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다.
‘김여사’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주부 김나영 씨는 iMBC 드라마펀 작가로 3년째 활동 중이다. 전아련(22) 씨도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에서 인기를 끌다 iMBC 프리랜서 작가로 발탁됐다.
<자작드라마 이렇게 만든다>
자작드라마는 어떻게 만들까. ‘스포츠동아’ 독자들을 위해 ‘김여사’, ‘꽐라’의 도움을 받아 기초 다지기와 실전 모드로 나눴다.
-기초 다지기
1. 우선 드라마를 애정을 갖고 보자.
2. 시청자 게시판 참고한다. 민감하게 반응할 만한 장면, 인터넷에 게시물을 올리는 사람들은 적극적인 고급 시청자다.
3. 사회적인 이슈나 주요 사건 사고, 인기 검색어 등에 항상 관심을 갖는다.
-실전 모드
1. 해당 드라마 주인공이 출연한 작품의 이미지와 전 작품의 이미지를 확보한다. 무엇보다 자작드라마에 쓰일 본 방송을 다운받아 캡처받는다.
2. 드라마를 보면서 콘티를 짠다. 기초가 튼튼해야 응용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3. 본격적인 포토샵 작업을 한다. 이미지를 보정하고 말풍선을 단다.
<자작드라마 달인을 만나다>
MBC는 패러디물을 모은 ‘드라마펀’ 사이트를 구축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 공간의 인기작가 필명 김여사(본명 김나영)와 꽐라(본명 전아련)를 인터뷰했다.
- 언제부터, 어떻게 연재하게 됐나?
김: “좋아하는 뮤지컬 동호회나 배우 팬 페이지에서 패러디물을 올렸다. 뮤지컬 ‘헤드윅’ 팬클럽에 올린 패러디물이 반응이 좋아서 공연장 전시용 포스터에 쓰이기도 했다. 3년 전부터 육아 콘텐츠 ‘김여사의 드라마리폼’을 연재하고 있다.”
꽐: “2006년 재수 할 때 디시인사이드 김삼순 짤방(짤림방지)에 현빈과 김선아가 실제로 사귀면 좋겠다는 반응이 있어 화면을 캡처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봤다. 처음엔 캡처하는 법도 모르고 포토샵도 못했는데 스스로 터득했다. 디시인사이드에서 인기를 끌다가 iMBC에서 연락을 했다. 재수를 끝내고 2007년부터 연재를 했다.”
- 소재는 어떻게 얻는가?
김: “기본적으로 방송을 빼놓지 않고 본다. 남편과 함께 매 장면 장면 우스갯소리를 주고 받으며 보는 것이 아이디어를 얻는데 도움이 됐다. 드라마리폼 88회 ‘이산’의 장태우 패러디의 경우도 남편과 함께 보다 떠올랐다.
꽐: “신문을 꼼꼼하게 본다. 사회적인 이슈나 인기 있는 광고 등을 드라마에 접목시키려고 노력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그릴 수 있는 콘티 북이 있다. 지금은 5권이 됐다. 정말 좋은 아이디어가 많았는데 놓친 것도 많다.”
- 자작드라마 전문가로 꼽히는데.
김: “평범한 구성이 아쉬울 때가 많다. 아이디어는 좋은데 웃음 포인트가 없어서 아쉬울 때가 많아 ‘내가 이걸 다시 만들어봐?’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건 표절이라 건드릴 수 없다.”
꽐: “최대한 그 패러디가 보여줄 수 있는 재미를 모두 활용하고 끌어내는 것도 하나의 센스고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태왕사신기’의 최민수가 고민을 게시판에 털어놓고 누리꾼들이 답하는 형식을 택했는데 ‘무한도전’의 노홍철이 소녀에 집착하는 것과 연결시켰다.”
정기철기자 tom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