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이 책이 출판됐을 때 학계는 즉각적인 논쟁에 휩싸였다. 마치 1859년에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했던 때와 흡사했다. 저자는 다윈주의 진화론자이지만 진화의 기본 단위를 ‘개체’나 ‘종(種)’이 아닌 불멸의 존재인 ‘유전자’로 보는 주장을 펼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유전자의 꼭두각시일 뿐이다. 모든 동물은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기계이며, 미리 정해진 프로그램대로 살면서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로봇일 뿐이다. 이탈리아의 갱단처럼 유전자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비정한 이기주의’이다. 보편적 사랑, 종 전체의 번영 같은 것은 진화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생명체를 돕는 이타적 행동도 결국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이기적 행동일 뿐이다.
동물 행동을 관찰하면서 얻은 생생한 사례와 간결한 문체는 ‘과학의 문외한’인 대중을 이 책으로 끌어들였다. 30년 동안 수많은 혹평과 찬사 속에 이 책은 2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 생명복제기술과 유전공학이 발전하고 있는 요즘 이 책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저자는 유전자의 세계는 비정한 경쟁, 끊임없는 이용, 그리고 속임수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유전자 이기주의는 동물생물학뿐 아니라 부모와 자식 간, 남녀 간의 미묘한 싸움, 가족계획과 개체 수 조절, 집단과 이타주의, 게임이론 등 사회적 경제적 주제로까지 연결된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유전의 영역을 인간 문화로까지 확장한 ‘밈(Meme) 이론’이다. ‘밈’은 저자가 만든 새로운 용어로 ‘모방’이란 뜻이다. 유전적 진화의 단위가 유전자라면 문화적 진화의 단위는 ‘밈’이다. 유전자는 하나의 생명체에서 다른 생명체로 복제되지만, 밈은 모방으로 한 사람의 뇌에서 다른 사람의 뇌로 복제된다.
그러나 유전자의 ‘이기적’ 행동이라는 의인화 접근 방식이나 유전자가 모든 생명현상에 우선한다는 ‘결정론적 생명관’은 여전히 많은 논쟁을 낳고 있다.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의 뇌는 유전자의 독재에 반항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다.
호주의 한 독자는 “이 책은 무척 재밌었지만 나는 때때로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한다”며 “10년 이상 나를 괴롭혀 온 일련의 좌절감을 이기적 유전자의 탓으로 돌리게 됐으며, 이는 매우 강한 인격의 위기를 야기했다”고 편지를 보냈다.
저자는 발간 30주년을 맞아 새로 쓴 서문에서 “‘어떠해야 한다는 주장’과 ‘어떠하다고 하는 진술’은 다르다. 어떤 진실이 우리가 진실이 아니기를 바란다고 해서 그 진실을 원상태로 돌릴 수는 없다”고 말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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