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의 초록마을 ‘스위스 그린델발트’

  • 입력 2008년 4월 10일 08시 45분


기분 좋은 봄날…雲·水 좋은 봄날…

‘어퍼컷’을 맞은 기분이었다.

눈앞을 가득 메운 웅장한 빙벽. 그린델발트에서의 첫날 밤은 커튼 뒤 아이거 북벽이 전해준 충격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야 했다.

유럽 여행자들에게 스위스와 알프스는 동경의 장소다. 하지만 스위스 인터라겐에서 출발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인 융프라우요흐(3454m)를 단 하루 만에 둘러보는 여행만으로는 2부족하다. 봉우리 밑에 둥지 튼 산악마을에 머물며 알프스의 ‘흙’을 밟고 ‘향기’를 맡아야 유럽인들이 그토록 칭송하는 융프라우의 진정한 멋을 느낄 수 있다. 노곤한 산행 후 노천바에 앉아 이곳 전통맥주 뢰겐브로이를 마셔 보는 일, 빙하가 녹아 내리는 알프스를 바라보며 트래킹하는 호사스러운 일들이 봄날 그린델발트에서는 가능하다.

봄이 되면 빙하 위에 자리잡은 산악마을, 그린델발트의 호흡은 빨라진다. 이곳에서의 체험은 산악열차를 타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인 융프라우요흐에 오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트래킹 시즌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면 거리의 상가들은 자정까지 문을 열고,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배낭족이 어우러지며 고요한 마을이 흥청거리기 시작한다. 짜릿한 체험의 아지트인 융프라우에서 젊은 청춘들은 계곡 번지점프에 도전하거나 자전거를 빌려 인터라겐까지 질주하기도 한다. 빙하가 녹은 뤼취넨계곡으로는 래프팅 마니아들이 몰려 든다.

수천m 설산 속을 가르는 패러글라이딩은 인터라겐 공원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패러글라이딩과는 차원이 다르다. 융프라우 지역에만 76개, 총 200km 트래킹 코스가 있는데 능선과 능선을 잇는 트래킹 코스는 꼬박 한나절이 걸리기도 한다.

○ 바흐알프호수가 만든 데칼코마니

융프라우 일대 트래킹의 묘미는 피르스트에서 체험할 수 있다.

해발 2168m의 피르스트역에서 바흐알프 호수까지 이르는 트래킹 코스는 평이하면서도 아기자기하다. 그린델발트에서 피르스트로 향하는 곤돌라 아래 정경은 농익은 계절의 흐름과 짙은 알프스의 향기가 담겨 있다. 세모지붕 샬레풍의 집들이 옹기종기 늘어선 가운데 산악열차들이 마을을 양곱창처럼 에워싸며 고즈넉하게 오르는 모습도 보인다. 봉우리마다 흰 눈이 덮였지만, 산마루로 시선을 옮기면 집집마다 푸른 정원에 야생화를 피워 낸다.

종착역인 피르스트역에서는 ‘마운틴 로지’라는 산장이 이방인들을 반긴다. 하루 묵을 수도 있고, 등산화도 빌릴 수 있으며 산장 앞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한다. 열 평 남짓한 교회당이지만 창밖에 펼쳐지는 풍경만으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숭고하고 웅장한 결혼식이 될 것이라는 상상에 빠지게 만든다.

교회 밑은 이 일대 최고의 패러글라이딩 출발 포인트가 자리잡았다.

2000m 넘는 곳에서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를 바라보며 하늘을 나는 체험은 피르스트 트래킹의 또 다른 흥분 촉진제다.

피르스트에서 시작되는 산행길은 키 작은 풀과 야생화로 가득 채워진다. 이곳은 낮은 평균 기온 탓에 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그 지리한 풀밭은 알프스의 젖소들에게는 귀한 터전이 됐다. 봄이 되면 커다란 종을 목에 단 소들의 행렬이 도로를 빼곡히 메우는 이색 광경을 볼 수도 있다.

바흐알프 호수로 향하는 트래킹 코스에는 족히 4m는 됨직한 나무기둥들이 듬성듬성 꽂혀 있다. 눈이 쌓였을 때를 대비해 길을 표시하려고 꼽아놓은 것인데 그 높이를 보면 이곳의 적설량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왕복 3시간 가량인 피르스트 트래킹의 클라이막스는 바흐알프 호수를 만나는 것이다.

스위스 홍보책자에 단골로 등장하는 호수인 바흐알프는 설산과 베르니즈 알프스의 봉우리가 데칼코마니로 찍어낸 듯 대칭을 이루며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대부분의 산행객들은 갈 길을 멈추고 호수의 정경에 한동안 넋을 잃어 자리를 뜨지 못한다. 빙하가 녹아 형성된 이곳 호수는 푸르고 맑으나 물이 너무 차가워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

피르스트 산행의 재밋거리는 하산길에도 숨어 있다. 중간역 보르트에서 내려 페달 없는 스쿠터 바이크를 타고 꼬불꼬불 오솔길을 따라 알프스 마을을 달리는 기분은 허파까지 상쾌하게 만든다.

○ 빙하계곡에서 번지점프를 하다

업그레이드 된 가슴 서늘한 체험을 즐기고 싶다면 그린델발트 인근의 마르마르브루후 협곡으로 향한다. 깎아지른 절벽이 양쪽에 내리꽂힌 협곡 사이에는 120m 높이의 점프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점프대 양쪽에는 빙벽들이 날카롭게 솟아 스치기만 해도 몸이 부서질 것 같은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협곡 사이에서 뛰어내리는 점프는 이곳 사람들에게 ‘캐니언 점프(canyon jump)’로 불리며 아래로 급강하한 뒤 매달린 줄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협곡 사이를 가로지르게 된다.

위 아래에 보호장비가 완벽하게 착용되면 서명부터 받는데 대충 훑어보면 ‘이대로 죽어도 좋다’, ‘어머니는 내가 이곳에 온 것을 모른다’는 내용이 농담반, 진담 반으로 적혀 있다.

올려다보면 알프스의 준봉, 멀리 발아래로는 마을들이 펼쳐진 사이로 점프를 하게 되는데 단 2초동안 느끼는 쾌감이지만 알프스, 그것도 융프라우에서 번지점핑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뿌듯하게 만든다.

심장 뛰는 감동의 체험은 융프라우 일대 곳곳에서 가능하다. 100년 넘은 톱니바퀴 열차를 타고 쉬니케 플라테에 오르면 야생화를 보며 트래킹을 하는 색다른 코스가 마련돼 있다.

이곳 산장에서는 석양의 야외콘서트가 열리기도 하는데 정상 산장에 묵으면 융프라우 일대 봉우리들이 태양의 방향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얼굴’을 바꾸는 장면을 감상할 수 있다.

노곤한 산행후, 땅거미가 내리면 그린델발트 마을 노천바에 앉아 이곳 전통맥주인 뢰겐브로이 한잔을 마신다.

한낮에 눈을 지치게 했던 화려한 경관은 알코올에 희석돼 몽롱하고 아득하게 뇌리를 스치고 지난다. 빙하가 녹아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알프스 정상으로 별이 쏟아지는 정경만 바라봐도 융푸라우와 그린델발트는 지우지 못할 진한 추억이 된다.

스위스 여행을 준비하는 젊은 여행자들을 위한 알짜 정보 두 가지.

4∼6월 성수기를 피해 스위스 여행을 떠나면 50할인된 가격에 철도 패스를 이용할 수 있다. 게다가 6월에는 세계 축구팬들이 열광하는 ‘유로 2008’ 대회가 공동 개최국인 스위스 전역에서 열린다. 값싸게 열차도 타고 최고의 명경기도 감상할 수 있는 ‘꿩 먹고 알 먹고’ 찬스다.

올해 한국 여행자에 한정해 특별히 진행되는 ‘스위스 유스 패스’ 할인은 4월1일부터 5월31일까지 패스를 구입하고, 해당 패스로 4월1일부터 6월30일까지 여행할 때 적용된다. 대망의 ‘유로 2008’은 6월7일 스위스 바젤에 있는 세인트 제이콥파크 경기장을 시작으로 베른, 제네바, 취리히 등 4개 도시에서 열리며 6월29일 빈 에른스트하펠 경기장에서 마무리 된다.

스위스 유스 패스는 기존 25할인에 올해 추가 25할인 혜택이 적용되며 만 25세 이하뿐 아니라 ISIC(국제 학생증) 카드 소지자는 나이에 관계없이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나이 든 대학원생도 할인혜택이 주어지는 셈이다. 스위스 패스로는 기차뿐 아니라 버스, 트램, 보트 등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박물관 무료입장, 산악열차 50할인도 가능하다.

글·사진 | 서영진(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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