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시계, 자동차를 만나다…2008 시계보석 박람회 바젤월드

  • 입력 2008년 4월 11일 02시 59분


《햄릿에겐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였지만 박람회 관람객들에겐 ‘자동차 속으로 들어간 시계’라 불러야 하는지 아니면 ‘시계로 만든 자동차’라고 말해야 하는지가 문제다. 10일 막을 내린 스위스 바젤의 세계적인 시계 보석 박람회 ‘바젤월드’에서 눈길을 끈 것 중 하나는 바로 자동차 ‘K O 7’. 열에 아홉은 “시계 보석 박람회에 웬 자동차?”라며 고개를 갸우뚱하겠지만 근심은 접어도 된다. ‘K O 7’은 스위스의 시계 브랜드 태그호이어와 일본의 자동차 디자이너 오쿠야마 겐이 함께 만든 자동차로 자동차 내 대시보드가 태그호이어의 새 브랜드 그랜드카레라로 디자인됐다. 여기에 이 브랜드의 칼리버 17 크로노그래프 시계도 달았다. 마치 커다란 시계를 보며 운전하는 듯한 이 자동차가 박람회에서 주목을 받은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2087개 업체 참가… 가벼운 세라믹소재, 점잖은 디자인 눈길

‘가장 따끈따끈한 혁신 기술을 찾아라, 최신 유행을 찾아내라…’라는 바젤월드의 기본 이념을 반영한 것처럼. 왼팔을 들어올려 시간만 확인하는 도구로 머물기엔 세상이 바뀌었다. 그래서 바젤월드는 외친다. “당신의 팔목에 새로운 기술을 차라”라고….

○ 스위스에서 세라믹을 외치다

1917년 소규모 박람회 ‘MUBA’로 시작된 바젤월드는 올해 91년째인 시계 보석 박람회다. 1984년 ‘바젤’에 이어 2003년 지금의 바젤월드로 이름을 바꾼 이 행사는 내년부터 2012년까지 스케줄이 짜여 있을 정도로 국제박람회로 거듭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총 45개 국가에서 2087개 회사가 참가한 이번 행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경향은 바로 가벼운 느낌의 시계가 주류를 이뤘다는 것이다.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바로 세라믹 신소재 시계. 지난해 크리스티앙디오르 샤넬 베르사체 등에서 소개됐던 세라믹(산화알루미늄) 소재 시계들이 대거 나타난 것으로 과거 스테인리스 소재 시계의 경우 시계를 찬 손목 주변에 물집이 생기거나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세라믹은 이런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세라믹 시계로 베르사체가 공개한 ‘DV(Diamond Vase) one’ 아시아 한정판 시계를 들 수 있다. 3년 전 첫 공개 때 “다이아몬드만큼 견고한 세라믹 소재로 만들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이 시계는 이번 박람회에서 아시아시장을 겨냥해 한정판으로 제작됐다. 200개의 다이아몬드가 시계 전체에 박혀 더 화려해졌다. 심지어 시계를 담는 상자에도 135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다.

‘방수’ 시계로 유명한 프랑스 시계 브랜드 테크노마린에도 세라믹 열풍은 이어졌다. 방수 시계 전문업체답게 전시관에선 물 속에 신상품들을 넣어 전시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다소 둔탁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번에 선보인 세라믹 제품들은 가벼운 색으로 디자인돼 한층 밝아졌다. 또 A 로고로 알려진 독일 브랜드 아이그너에서는 아예 세라믹 보석과 시계를 한 묶음으로 내놓은 ‘크리스털 파우더’도 선보였다.

○ 고전을 재해석하다

이번 박람회의 특징 중 하나는 디자인이 점잖아졌다는 것이다.

화려하거나 튀지 않은 대신 기본에 충실하려는 시계가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브랜드 고유의 디자인 제품인 ‘시그니처 라인’을 변형한 이른바 ‘현대와 고전의 합작품’들이 많이 선보였다.

대표적인 예로 로고 H가 다이얼에 박힌 에르메스의 H-아워 옥스퍼드 시계를 들 수 있다. 디자인은 고전적이다 못해 단순한 느낌을 주지만 H 로고를 형상화한 다이얼이나 가죽에 길게 뻗은 주황색 선에서는 다소 감각적이다.

또 기본 스타일의 시계에 도시를 형상화한 피아제의 투르비옹 를라티프 시리즈는 프랑스 파리와 미국 뉴욕을 시계에 담았다. 파리 시계는 다이얼 부분에 개선문에서 12개의 도로가 담겨 있고 측면에는 루브르 박물관과 피라미드, 콩코드 광장의 대관람차, 에펠탑 등이 그려져 있다. 뉴욕 시계에는 자유의 여신상과 맨해튼 다리가 새겨져 있다. 이 밖에 태그호이어의 그랜드카레라에서 내놓은 빈티지 시계는 과거 시계를 거칠게 재해석해 눈길을 끌었다.

점잖은 건 크리스티앙디오르의 시계에서 뚜렷했다. 이전에는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를 비롯해 수십 개의 보석, 번쩍이는 크리스털 등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었지만 올해는 잠시 그 끼를 아낀 걸까?

크리스티앙디오르가 올해 박람회에서 선보인 시계들은 파랑, 검정 등으로 톤이 다소 낮다. 특히 디오르 크리스털의 미드나이트 블루 풀 세트는 천연고무로 만든 시계의 밴드 부분부터 다이얼까지 보라색에 가까운 푸른색을 전체 테마로 잡았다. 다이얼 가장자리에도 보라색 크리스털이 박혀 있는 등 고급스럽고 ‘중후한’ 느낌을 많이 담으려고 노력했다. 또 193개의 바게트 자수정이 박혀 있는 디오르 크리스털 하이 주얼리 애머티스트도 특유의 보랏빛으로 시선을 끌었다.

시계의 다이얼 크기가 큼직해진 것도 화제였다. 이번 박람회에 전시된 시계들의 평균 다이얼 지름은 5cm 이상으로, 3.5cm 내외였던 이전보다 전반적으로 시원한 느낌을 줬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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