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학교에 마을도서관을]마라도서 온 이현진 군의 감사편지

제주도 푸른 봄. 그보다 더 남쪽 바다에서 푸른 바람 아래 책을 읽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마라도 섬마을 아이들인 정수현 양, 이현진 군, 라해빈 양(왼쪽부터). 학교마을도서관에 새로 들어온 책을 품에 끼고 놓질 않는다. 그 옆 모자 쓴 아이는 여섯 살 김영주 군. 김 군이 내년에 마라분교에 입학하면 전교생은 4명이 된다. 사진 제공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

109호 가파초등교 마라분교

‘머나먼 남쪽 바다에서 온 편지.’

따사로운 봄바람을 타고 ‘고향 학교에 마을 도서관을’에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에서 편지가 온 것. 글을 쓴 주인공은 이 섬에 단 하나 있는 초등학교인 가파초교 마라분교 3학년 이현진(9) 군이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마라도의 마라분교는 이 군을 포함해 전교생이 달랑 3명인 학교다. 나머지는 1학년인 정수현 양과 라해빈 양. 이곳에 11일 109번째 학교마을도서관이 생겼다. 이 군이 감사의 뜻으로 편지를 보내왔다. 그 전문을 소개한다.

그날은 아침부터 바쁜 날이었습니다. 우리 학교에 기다리던 학교마을도서관이 생기는 날이었거든요. 아빠 엄마는 선거 때문에 이틀 전 모슬포에 나갔다 아침에 겨우 마라도로 돌아왔습니다. 풍랑주의보가 내리면 며칠씩 발이 묶여 섬에 들어오기 힘이 듭니다.

섬에 도착하니 가파도 선생님과 가파도 형 누나들도 와 있었습니다. 우리 학교는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입니다. 분교에 학교마을도서관이 생기는 게 선생님과 형 누나들도 기뻤나 봅니다.

누나 형들도 반가웠지만 저는 무지 커다란 버스가 더 신기했습니다. 어른들은 이 버스가 ‘책 버스’라고 일러주셨어요. 사실 지난달 선생님이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과 동아일보, 네이버가 책 있는 버스를 보내준다는 걸 말씀해주셔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NAVER’를 네이버라고 읽는 것도 미리 배워뒀답니다. 말은 들었지만 막상 버스에 오르니 진짜 책이 가득했어요. 이 책 저 책을 보며 한참 놀았습니다.

버스에서 놀다 점심 때 자장면을 먹고 얼른 학교로 뛰어갔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었어요. 여러 어른들이 저에게 ‘인터뷰’를 하자고 하셨습니다. 뭐가 그리 궁금한 게 많은 건지…. 그래도 열심히 대답했습니다.

조금 있다 학교마을도서관 개관식이 열렸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말씀을 하시고 여러 아저씨들이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준비한 차례와 도서관을 생각하느라 잘 듣지 못했습니다.

어른들 말씀이 끝나자 가파도 형 누나들이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기타도 치고 풍물놀이도 했습니다. 드디어 제 차례가 됐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만든 ‘물 로켓’을 가지고 나와 사람들 앞에서 쏘아 올렸습니다. 멋지게 날아올랐습니다. 다들 박수를 쳐주셨어요. 전 물 로켓이 너무 좋습니다. 언젠가 물 로켓 대회에 나가려고 선생님과 연습도 많이 합니다.

개관식이 끝나고 학교마을도서관을 보러 열심히 뛰어갔습니다. 너무 신났습니다. 예전에도 우리 학교에 책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하늘색으로 된 책장에 책도 꽤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책장이 너무 헐어서 지저분했습니다. 괜히 책 보기가 싫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도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우리 학교마을도서관이 제일 좋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깨끗합니다. 새 책도 굉장히 많습니다. 아빠 엄마를 위한 어른들이 보는 두꺼운 책도 많습니다. 괜히 우쭐했습니다.

제일 신나는 건 제가 좋아하는 타이타닉호에 대한 책이랑 우주선에 대한 책이 생긴 것입니다. 저는 우주선이랑 배가 너무 좋습니다. 커다란 타이타닉호 책은 정말 재미있습니다. 비밀인데요, 사실 개관식 하기 전에 살짝 와서 타이타닉호 책은 몰래 감춰 놨습니다. 누가 먼저 가져다 볼까 봐서요. 개관식 내내 혹시 가져가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타이타닉호랑 우주선 책을 읽은 뒤엔 도서관에 있는 책을 모두 다 읽을 것입니다. 혼자만 읽진 않겠습니다. 1학년인 수현이랑 해빈이에게도 제가 읽은 책을 다 알려주겠습니다. 다 같이 다 읽겠습니다.

요즘 저는 학교에 오면 그냥 기분이 좋습니다. 학교 마치고 집에 갔다가도 점심 먹고 다시 학교에 옵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습니다. 수현이 해빈이는 아직 책을 잘 못 읽는데도 학교에 옵니다. 함께 책을 읽습니다.

동아일보, ‘작은 도서관…’, 네이버 모두 고맙습니다. 그곳에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앞으로 책 열심히 읽겠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2008년 4월 15일 이현진 올림

▼강원도 40곳 최다 경남-충북 12곳씩▼

지금까지 전국에 생긴 학교마을도서관은 11일 마라분교 학교마을도서관까지 모두 109곳. 1991년 7월 전북 원천마을도서관을 시작으로 올해 17년째를 맞았다. 준비기간까지 포함해 20여 년의 피와 땀이 이룬 결과물이다.

기증 도서는 모두 약 37만 권. 들어간 돈만 따져도 25억 원이 넘는다. 강원도 산골마을부터 한반도 남단 섬마을까지 전국 어지간한 곳에는 학교마을도서관이 들어섰다.

가장 많이 세워진 곳은 강원도. 강릉시 7곳을 포함해 모두 40곳에 학교마을도서관이 있다. 다른 지역보다 열악한 문화 환경을 고려한 안배였다. 지난달 강원도와 ‘농어촌지역 학교마을도서관 조성 협약’을 체결할 정도로 지방자치단체의 협력도 남다르다.

경남과 충북이 12곳으로 그 뒤를 이었다. 경남도 강원과 마찬가지로 거제 거창 함양 등 기초 지자체들이 도서관 유치에 발 벗고 나섰다.

제주도에는 의외로 7곳이나 들어섰다. 2000년 추자도에 이어 이번 마라도까지 인근 섬 지역에도 학교마을도서관이 생겼다.

17일에는 경남 함양군 백전초등학교에 110번째 학교마을도서관이 개설된다. 뒤이어 강원 철원군 장흥초등학교(21일), 강릉시 사천초등학교(25일)에 111번, 112번째 도서관이 생길 예정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