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일상을 만날 때]빗나가야 안타가 되는 아이러니

  • 입력 2008년 4월 17일 02시 55분


‘평소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승리에 겸손하지 않았고 패배에 순종하지 않았다.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세상을 얻은 듯 기뻐했고 패하면 욕설을 퍼부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의 아버지만의 다이아몬드에서 선수들은 세계의 존망을 걸고 다투는 전사였다.’(‘게임의 규칙’ 중)

여느 사내들처럼 소설가 김경욱(37) 씨도 야구를 좋아한다. 단편 ‘게임의 규칙’(‘2006 이효석문학상수상작품집’ 수록)에서 천재소년의 인생이 뒤바뀌는 중요한 모티브로 야구를 끌어온 건 무엇보다 야구팬이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적 동네 야구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학에 가서도 종종 캠퍼스 공터에서 테니스공으로 야구를 했고, 학과 대항으로 경기할 때도 빠지지 않았다. 운 좋게 야구를 좋아하는 부인을 만나, 다른 집과 달리 채널 분쟁하지 않고 사이좋게 야구 경기를 본다.

“야구는 아이러니의 게임이기도 해요. 빗나가야 안타가 된다는 걸 생각해 보세요.”

공이 많이 날아오는 곳은 수비수들이 꿰차고 있으니까, 수비수의 예상영역을 비켜나야 안타가 된다는 얘기다. 그게 어디 야구뿐일까. 인생도 그런 아이러니 때문에 드라마가 된다.

박현욱(41) 씨의 장편 ‘새는’도 1980년대의 입시지옥 열기를 야구로 식혔던 고교생 은호의 이야기다. 그의 소설처럼 80년대의 문화란, 야구를 빼놓을 수가 없었다. 은호처럼 그맘때 작가도 야구에 푹 빠졌었다. 얼마나 최동원이 멋져 보였는지, 최동원이 나온 연세대가 제일 좋은 학교라고 생각했다(박 씨도 연세대를 나왔다).

프로야구가 생긴 지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너무나 많은 볼거리가 생겨버려 그 자신도 야구와 멀어졌다는 그(지금은 축구에 집중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야구나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의 바로 그 공터에서 언제 경기가 끝날지 모르는 아주 지루한 게임을 딱 한 번만이라도 다시 해보고 싶다”는 것은 소설 속 은호의 바람만은 아닐 것이다. 사내들에게 야구란 막무가내 순정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사내들의 야구 사랑을 여성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구도(球都) 부산에서 나고, 사내아이들의 동네 야구를 응원하며 자랐고, 지금도 부산에서 살고 있는 소설가 박주영(37) 씨. 그는 장편 ‘백수생활백서’에서 ‘세상 모든 것에서 야구를 찾아낸’ 일본 작가 다카하시 겐이치로를 언급한 적이 있다.

“야구는 통계와 확률 같은 걸 따지잖아요. 수많은 숫자들이 동원되고, 분석도 정치하게 해야 하고요. 그렇게 미세한 데가 있어서 끌리는 게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 위의 두 남성이 지나가듯 했던 얘기가 떠오른다.

“야구는 전광판에 숫자가 많이 들어가잖아요. 회별 점수, 안타, 에러…. 굉장히 복잡하다는 게 매력이지요.”(김경욱 씨)

“야구는 기록경기지요. 방어율, 타율…. 그런 건 가만히 있어도 외워졌어요.”(박현욱 씨)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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