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객석에 앉은 배우, 무대위 ‘자신’을 보다

  • 입력 2008년 4월 17일 02시 55분


배우이야기 다룬 ‘줄리에게 박수를’

연극배우 2인이 직접 감상해보니…

《연극 ‘줄리에게 박수를’은 ‘햄릿’을 준비 중인 무명 배우들의 이야기를 다룬 창작극이다. 햄릿 역을 맡은 석동은 오필리어 역을 맡은 선정을 짝사랑하지만, 선정은 5년 전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 역을 맡았던 옛사랑 민호 때문에 줄리엣으로 남고 싶어 한다. 이 연극은 세 남녀를 축으로 연극인들의 열정과 사랑, 현실에 대한 고민들을 사실적이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았다. 이 작품을 본 실제 연극배우들은 어떤 인상을 받았을까. 서울 대학로에서 11년째 연극배우를 해온 김동현(34)과 대구의 3년차 배우 김성진(30)의 이야기를 들었다.》

○ 오전에는 우유배달, 오후에는 연극 연습하는 석동

김동현(동): “예전 그 선배는 지금 뭐 한다더라, 그 후배는 뭐 한다더라”는 대사는 정말 와 닿더라. 연극 하다 다른 길 가는 사람이 많잖아. 힘들어서 동대문에서 속옷 파는 사람도 있고, 여배우들은 결혼하거나 유치원 교사를 하기도 하고. 잘된 사람도 있지. (박)해일이처럼…. 극단 ‘동숭무대’에 같이 있었는데 지금은 스타잖아.

김성진(성): 후회는 안 하는데 힘들 때가 많으니 더 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가끔 해요. 그럴 때는 나가서 전단지를 더 돌려요. 예매한 사람이 10명밖에 없으면 나가서 “행복이 가득한 공연입니다” 하고 외쳐요. 그럴 때면 서울 대학로의 배우들은 많은 관객 앞에서 연기를 하고 금방 스타 되니 좋겠다고 부러워하기도 했고요.

동: 하하. 그거 판타지다. 여기도 어려워.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배우가 많아. 웨이터나 대리운전도 하고, 여배우들은 홍보 비디오도 찍는데 대체로 어려워. 전세금 까먹으며 버티다가 부모님한테 끌려가는 애들도 많아.

성: 하루는 저금통을 털었더니 100원짜리 8개, 50원짜리 4개, 10원짜리 10개가 전부예요. 버스비로 내는데 동전이 와르르 쏟아져 어찌나 창피했던지. 연극영화과 졸업 후 옷장사 하며 돈 잘 벌다가 큰 맘 먹고 돌아왔는데, 순간 ‘이러려고 장사 그만두고 연극 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극단 동료 선정을 짝사랑하는 석동

성: 극단 내 연애담도 솔깃했어요. 연극판에 그런 일이 많잖아요. 선배가 후배를, 후배는 연출을, 연출은 다른 선배를…. 여주인공이 연출의 아내가 되기도 하고. 작품에서 여배우들이 “우리, 셰익스피어 씨나 꼬시러 갑시다”라고 하잖아요. 나쁜 뜻이 아니라 찬밥신세 안 되려면 연출이나 작가한테 잘 보여야 해요. 남녀를 떠나 마찬가지예요.

동: 나도 극단 내에서 연애했는데 동료들이 축복을 안 해주더라고. 결국 극단 나오고 그 친구는 연극을 그만뒀어. 그러면서 멀어졌고.

성: 연극계가 말이 많은 곳이잖아요. 안 좋은 경우를 많이 봤어요. 극단을 떠나거나 방출되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를 세뇌시켰어요. 극단 내 여자는 쳐다보면 안 된다. 하하.

○ “이름 없는 꽃은 정말 이름 없는 꽃이 아닙니다”

성: 어떤 대사가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동: 석동이 말하잖아. “오늘부터 세상의 모든 어중간한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낼 겁니다. 이름 없는 꽃은 정말 이름 없는 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그 이름을 찾아내지 못했을 뿐. 그 꽃들도 분명 향기를 뿜으며 벌 나비를 유혹했을 테니까요.” 나도 치열하게 살아온 거 같은데 지금 보면 어중간하거든.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것 뿐이야’라고 생각했어.

성: 저도 그 대사 좋더라고요.

동: 박근형 연출이 배우는 ‘산삼’이라고 말했어. 아직 캐내지 못한 산삼이라고. 산삼은 시간이 지날수록 효력이 좋잖아. 20∼30년 지나서 발견됐을 때 그 값은 따질 수 없지. 지금 고생이 괜한 게 아니야.

성: 저는 민호가 선정한테 “바람이 불어서 나뭇잎이 흔들리면 잘 들어. 그 소리, 내가 보내는 박수 소리야”라고 말할 때 좋았어요. 다음 작품에 한번 인용해보고 싶어요. 관객이 없어도 이 말 생각하며 용기 내려고요.

공연은 5월 5일까지.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02-708-5002

글=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사진=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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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줄리에게 박수를' 소개 동영상. 유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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