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배우 2인이 직접 감상해보니…
《연극 ‘줄리에게 박수를’은 ‘햄릿’을 준비 중인 무명 배우들의 이야기를 다룬 창작극이다. 햄릿 역을 맡은 석동은 오필리어 역을 맡은 선정을 짝사랑하지만, 선정은 5년 전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 역을 맡았던 옛사랑 민호 때문에 줄리엣으로 남고 싶어 한다. 이 연극은 세 남녀를 축으로 연극인들의 열정과 사랑, 현실에 대한 고민들을 사실적이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았다. 이 작품을 본 실제 연극배우들은 어떤 인상을 받았을까. 서울 대학로에서 11년째 연극배우를 해온 김동현(34)과 대구의 3년차 배우 김성진(30)의 이야기를 들었다.》
○ 오전에는 우유배달, 오후에는 연극 연습하는 석동
김동현(동): “예전 그 선배는 지금 뭐 한다더라, 그 후배는 뭐 한다더라”는 대사는 정말 와 닿더라. 연극 하다 다른 길 가는 사람이 많잖아. 힘들어서 동대문에서 속옷 파는 사람도 있고, 여배우들은 결혼하거나 유치원 교사를 하기도 하고. 잘된 사람도 있지. (박)해일이처럼…. 극단 ‘동숭무대’에 같이 있었는데 지금은 스타잖아.
김성진(성): 후회는 안 하는데 힘들 때가 많으니 더 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가끔 해요. 그럴 때는 나가서 전단지를 더 돌려요. 예매한 사람이 10명밖에 없으면 나가서 “행복이 가득한 공연입니다” 하고 외쳐요. 그럴 때면 서울 대학로의 배우들은 많은 관객 앞에서 연기를 하고 금방 스타 되니 좋겠다고 부러워하기도 했고요.
동: 하하. 그거 판타지다. 여기도 어려워.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배우가 많아. 웨이터나 대리운전도 하고, 여배우들은 홍보 비디오도 찍는데 대체로 어려워. 전세금 까먹으며 버티다가 부모님한테 끌려가는 애들도 많아.
성: 하루는 저금통을 털었더니 100원짜리 8개, 50원짜리 4개, 10원짜리 10개가 전부예요. 버스비로 내는데 동전이 와르르 쏟아져 어찌나 창피했던지. 연극영화과 졸업 후 옷장사 하며 돈 잘 벌다가 큰 맘 먹고 돌아왔는데, 순간 ‘이러려고 장사 그만두고 연극 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극단 동료 선정을 짝사랑하는 석동
성: 극단 내 연애담도 솔깃했어요. 연극판에 그런 일이 많잖아요. 선배가 후배를, 후배는 연출을, 연출은 다른 선배를…. 여주인공이 연출의 아내가 되기도 하고. 작품에서 여배우들이 “우리, 셰익스피어 씨나 꼬시러 갑시다”라고 하잖아요. 나쁜 뜻이 아니라 찬밥신세 안 되려면 연출이나 작가한테 잘 보여야 해요. 남녀를 떠나 마찬가지예요.
동: 나도 극단 내에서 연애했는데 동료들이 축복을 안 해주더라고. 결국 극단 나오고 그 친구는 연극을 그만뒀어. 그러면서 멀어졌고.
성: 연극계가 말이 많은 곳이잖아요. 안 좋은 경우를 많이 봤어요. 극단을 떠나거나 방출되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를 세뇌시켰어요. 극단 내 여자는 쳐다보면 안 된다. 하하.
성: 어떤 대사가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동: 석동이 말하잖아. “오늘부터 세상의 모든 어중간한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낼 겁니다. 이름 없는 꽃은 정말 이름 없는 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그 이름을 찾아내지 못했을 뿐. 그 꽃들도 분명 향기를 뿜으며 벌 나비를 유혹했을 테니까요.” 나도 치열하게 살아온 거 같은데 지금 보면 어중간하거든.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것 뿐이야’라고 생각했어.
성: 저도 그 대사 좋더라고요.
동: 박근형 연출이 배우는 ‘산삼’이라고 말했어. 아직 캐내지 못한 산삼이라고. 산삼은 시간이 지날수록 효력이 좋잖아. 20∼30년 지나서 발견됐을 때 그 값은 따질 수 없지. 지금 고생이 괜한 게 아니야.
성: 저는 민호가 선정한테 “바람이 불어서 나뭇잎이 흔들리면 잘 들어. 그 소리, 내가 보내는 박수 소리야”라고 말할 때 좋았어요. 다음 작품에 한번 인용해보고 싶어요. 관객이 없어도 이 말 생각하며 용기 내려고요.
공연은 5월 5일까지.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02-708-5002
글=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사진=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dongA.com에 동영상
▲ 연극 '줄리에게 박수를' 소개 동영상. 유성운 기자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