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1839∼1906)은 늘 사과를 관찰했다. 빛과 음영, 시간, 생각 등에 따라 사과가 어떻게 달리 보이는지 관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관찰은 매번 사과가 썩을 때까지 계속됐다.
그건 대상의 형태보다 대상의 존재 의미를 탐구하는 작업이었다. 본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탐구이기도 했다. 이처럼 세잔의 그림은 철학적 사유의 결과물이다. 세잔이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지적인 작업을 남긴 작가로 평가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잔은 그래서 늘 철학자 사상가들의 주목을 받아 왔고, 사과는 세잔의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 상징적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 책은 그 같은 세잔 미술에 대한 새롭고 흥미로운 철학적 미학적 해석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지그문트 프로이트, 조르주 바타유, 질 들뢰즈, 자크 라캉, 모리스 메를로퐁티 등 사상가 6인의 시각으로 세잔의 미술과 미학을 깊숙이 들여다봤다. 이들 6인은 세잔을 직간접적으로 연구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서양미술사학자인 저자는 크리스테바의 멜랑콜리 이론과 기호학적 시각을 통해 세잔 작품 속의 얼굴 표정과 색채의 관계를 추적한다. 우울한 얼굴이 표면적으로 정서를 가린다고 해도 결국엔 색채를 통해 정서의 깊이를 드러낸다고 설명한다.
바타유의 에로티즘 미학과 초현실주의 개념의 틀로 성(性)과 폭력이 가득한 세잔의 초기 작품들을 고찰한다.
또한 들뢰즈 철학의 감각과 형상의 개념을 통해 세잔 그림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시도한다. 들뢰즈에 따르면 세잔의 관심은 형태의 유사성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감각을 표현하는 것에 있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상가 6인의 시각으로 세잔의 미술을 들여다보는 것은 참신한 시도다. 하나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생동감 넘치는 다양한 시선으로 세잔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늘 새롭게 해석되어온 세잔의 미술. 그 세잔 미술의 미학적 역사적 의미를 다각도로 이해할 수 있는 연구서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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