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씁쓸한 뒷맛 남기는 날 선 풍자의 시어들

  • 입력 2008년 4월 19일 02시 58분


◇고시원은 괜찮아요/차창룡 지음/164쪽·6000원·창비

‘실내 고행림에 와 있다/이 숲에는 고행에 적합한 온갖 형틀이 골고루 마련되어 있어서/누구라도 돈만 내면 마음껏 고행을 즐길 수 있다’. 이 고행림의 이름은 헬스클럽. ‘아무리 달려도 달려나가지 못하는 트레드밀이라는 형틀에서는/피부가 새하얀 아가씨가’ 고행을 하고 있으며, ‘웃통을 벗어부친 시커먼 아저씨(40대 초반)가 누워서/쇠로 된 법륜을 들어올린다 (…) 굴러가지 않는 자전거에는 뚱뚱한 아줌마(30대 후반)가 끝없이/法의 페달을 밟고 있다’(‘실내 고행림’에서).

차창룡(42) 씨의 풍자정신은 여전히 날카롭게 빛난다. 등단 20년을 맞아 펴낸 새 시집 ‘고시원은 괜찮아요’는 일상의 풍경으로 가득하다. 시인의 눈으로 보여주는 그 일상은, 우리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세속에 살고 있는지를 확인시킨다.

‘식탁에는 온통 외국인뿐입니다/이곳은 외국인을 위한 선원인 것이지요 (…) 화장실은 늘 만원입니다 괜찮습니다 참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수행법이니/13호실에 비상용 사다리가 있지만/서로 간섭하지 않는 미덕이 습관이 되어/나와 직접 관계되지 않은 일에는 끼어들지 않습니다’(‘고시원은 괜찮아요’). 고시원의 외국인 노동자를 선원의 선승으로 비유하는 이 시는 시스템에 무작정 순응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묘파한다. 차 씨의 시에서 우리가 흔히 봐왔던 것들은 순식간에 낯선 것이 되어버린다.

‘덥긴 무지하게 덥지만요 하나도 덥지 않아요/춥긴 무지하게 춥지만요 하나도 춥지 않아요/하느님의 사랑인걸요 (…) 직접 느껴 보세요 하느님의 사랑을/직접 만져보세요/텔레비전 안테나가 성스러이 흔들리는 것을’(‘내가 옥탑방을 선택한 이유’)이라며 시인은 옥탑방에 사는 가난한 사람의 넉살스러운 목소리를 들려준다.

허헛, 웃음이 나오면서 쓸쓸함이 밀려오는 것, 그것이 차창룡 시의 힘이기도 하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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