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소녀에게 띄운 편지… 어, 어디로 배달된거야?

  • 입력 2008년 4월 19일 02시 58분


◇사랑해요 사랑해요/알렝 쎄르 글·올리비에 딸렉 그림·백수린 옮김/60쪽·1만 원·창비(7세∼초등 2년용)

이 이야기는 제법 자란 한 소년이 창밖 풍경을 내다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침, 창밖엔 가게 문을 여는 정육점 아저씨, 학교 가는 친구들이 보인다. 그리고 맞은편 집 파란 창문엔 한 여자 아이가 살고 있다. 여자 아이가 보이지 않는 날엔 괜히 시무룩해지지만, 막상 여자 아이가 나타나면 가에땅은 딴청을 피운다.

누군가에게 특별히 마음이 가기 시작하는 때다. 가까워지고 싶고 더 잘 알고 싶은데 이름밖에 모른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에땅은 편지를 쓰기로 한다. ‘로라 보주르에게, 바로 맞은편 창가에서 가에땅이.’ 콩콩 뛰는 가슴으로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돌아왔다. 우체통에 가득 찬 편지를 자루에 옮겨 담는 우체부 아저씨. 그런데 가에땅의 편지가 도랑으로 떨어진 걸 미처 못 봤다.

이제 편지의 여행이 시작된다. 도랑에 떠다니던 편지를 늙은 개가 집어 물고, 자동차가 개를 치면서 땅에 떨어진 편지를 약사가 주워 쓰레기통에 넣고, 청소부가 편지가 든 쓰레기 더미를 소각장으로 옮기고, 지나가던 새 한 마리가 쓰레기 위 편지를 낚아채선 하늘로 날아가고….

편지의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그치지 않는 전쟁, 이주노동자 문제 같은 지구 곳곳의 사회적 문제들과 맞부닥친다. 분쟁과 갈등에 시달리지만 한편으로 다사로운 정이 사라지지 않는 세상을 작가는 차분하게 보여준다. 따뜻한 색깔의 그림이 이야기와 잘 어울린다.

가에땅은 오늘도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맞은편에는 여전히 로라 보주르가 살고 있다. 그런데 가에땅은 이제 할아버지고, 로라 보주르는 할머니다. 방금 로라 보주르는 한 통의 편지를 받고는 환하게 웃는다. ‘정말정말 사랑해요. 바로 맞은편 창가에서 가에땅이.’

오랜 세월도, 전쟁의 화염도, 국경을 넘는 모험도 마침내 모두 이겨내는 것. 이 무렵이면 편지가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문학적인 아름다운 이야기로 사랑의 위대함을 알려주는 이야기, 아이와 어른 모두 감동받을 그림책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