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월드]우연한 만남-기쁨 ‘나비효과’는 알고 있었다

  • 입력 2008년 4월 22일 02시 52분


작은 내기를 할 때 흔히 ‘사다리 게임’이란 것을 한다. 횡과 열로 불규칙하게 엇갈린 선들이 만들어 내는 변화와 반전, 비예측성을 이용한 게임이다. 처음 만나는 선을 따라서 아래로 내려간다는 매우 간단한 규칙에도 불구하고 그 우연성과 재미가 만만치 않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우연성에 의존한 게임이기에 사람들은 부담 없이 참여한다. 예측할 수 없어 흥미진진한 것이다. 인간 본성에 맞는 놀이다.

인터넷 이용은 이런 사다리 게임을 많이 닮았다. 스스로 선택한 단어들의 조합으로 검색을 할 때, 블로깅을 할 때, RSS 서비스를 이용할 때, 커뮤니티 사이트를 방문할 때, 댓글 놀이를 할 때, 인터넷 메신저를 켜놓았을 때 등 이 모든 것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의식적 무의식적 효용은 사다리 게임의 그것과 유사하다. 예측할 수 없었던 만남이 주는 기쁨 그것이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영어 단어가 있다. 영화 제목으로, 또 뉴욕의 유명한 카페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 의미는 큰 변화를 만들어 내는 우연한 발견 또는 기쁨,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나 장소를 의미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인터넷이 바로 이런 세렌디피티다.

과거 오랫동안 예술가들의 인문학적 상상을 자극해 온 이 단어는 네트워크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문학적 소재 그 이상을 의미한다.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 같은 유수의 연구기관에서는 최근 세렌디피티를 최적화한 매체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리학과 수학의 지식을 이용해 ‘우연성’을 설계하고 상품화하려는 시도다. ‘우연성’이 과학적 탐구의 대상인 것이다.

네트워크가 만들어 내는 ‘우연성’을 연구하는 과학은 이미 수십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최초의 학자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지난주 90세를 일기로 타계한 에드워드 로렌츠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수천 km 떨어진 지역에서 발생하는 큰 바람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나비효과’로 유명한 분이다. 네트워크의 작은 변화가 엄청나게 큰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 관점은 후에 혼돈과 질서라는 것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카오스 이론의 토대가 된다. 최근 들어 인터넷에 기초한 네트워크 사회의 여러 특성을 분석하는 데 유용하다고 평가받는 복잡계 과학도 이 관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네트워크가 만들어 내는 혼돈과 우연, 비예측성이 일상인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언론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는 특성이다. 나비의 날갯짓 같은 소소한 의견이 태풍과도 같은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환경이다. 모든 것이 연결되고 상호 영향을 미치는 네트워크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전제되지 않고는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없는 시대다.

안민호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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