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소설집 ‘펭귄뉴스’는 상상 못한 히트였다. 김중혁(37·사진) 씨는 책이 나온 2006년 내내 많은 문학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아쉽게도 수상까지 이어지진 못했지만 확실하게 이름을 알리면서 ‘무관의 제왕’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새 소설집 ‘악기들의 도서관’(문학동네)이 나오기 직전인 지난주, 김유정문학상 수상자가 되면서 이제 그 말을 뒤집었다.
“운이 좋았다. 신인 작가가.”
‘펭귄뉴스’로 들떴던 한 해를 회상하며 김중혁 씨가 겸손하게 한 얘기다. 그렇지만 두 번째는 다르다. 더는 신인이 아니다. ‘악기들의 도서관’에 대한 평가는 좀 더 엄중해질 수밖에 없다.
‘악기들의 도서관’이라는 이상한 제목에 소설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 이 소설은 음악(악기)에 관한 얘기다. 한 영화음악가에게서 연주란 기교나 표정이 아닌 소리를 들려주는 것임을 배우는 피아니스트(‘자동피아노’), 리믹스가 원곡을 해치는 게 아니라 밑그림 위에 또 다른 그림을 그려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믿는 디제이(‘비닐광 시대’), 악기 소리를 테이프에 담아 빌려주는 악기도서관 주인(‘악기들의 도서관’) 등이 그렇다. 평론가 신수정 씨가 “‘청각의 제국’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라고 말한 대로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기타 소리,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음악을 테마로 삼은 것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음악은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시적이지 않다는 그 이유가 외려 매혹적이다.”
음악이 상상력을 증폭시킨다는 얘기다. 실제로 음악에서 발현한 상상력은 그야말로 상상을 뛰어넘는다. 악기 소리를 빌려주고 기증받는다는 아이디어도 그렇고, 매뉴얼을 만드는 회사(‘매뉴얼 제너레이션’)에 이르면 얼마나 그럴듯한지 정말 이런 회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는 단편 ‘무방향버스’를 통해 ‘소설의 리믹스’를 시도한다. 고인이 된 김소진의 소설 ‘고아떤 뺑덕어멈’의 처음과 마지막 두 문장을 그대로 쓰면서 자신의 방식으로 내용을 변주한 것이다. 워낙 독특한 소설 내용 때문에 ‘엉뚱한 작가’로 꼽힐 만하지만 그의 상상력 아래엔 단단한 취재력이 버티고 있다. 대학 졸업 뒤 10여 년 동안 잡지사 기자와 프리랜서 라이터로 활동하면서 호화 레스토랑부터 노점상까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나 그는 “취재할수록 모자람을 느낀다”고 털어놓는다.
이번 소설집에서 무엇보다 큰 변화는 김중혁 소설에서 사람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는 것. 사물수집가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그의 소설은 라디오, 자전거, 타자기 같은 사물을 탐구할 뿐 좀처럼 감정이 스미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엇박자 인생을 살아온 사내에 대해(‘엇박자 D’), 가정을 떠난 여인에 대해(‘무방향버스’) 헤아리려고 한다. 스스로도 “변신의 폭을 넓히는 것 같다. 인간에 대해 탐구하려는 쪽으로”라고 밝힌다. 이 변화로 ‘악기들의 도서관’의 중량감은 크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