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지오그래픽]역사의 땅 영월을 가다

  • 입력 2008년 4월 25일 02시 44분


《‘봄 실종’은 올해도 여전하다. 4월 중순 한낮 기온이 29도까지 치솟았다. 지난 주 강원 영월 땅이 그랬다. 땡볕이 어찌나 따갑던지 숲 그늘이 그리울 정도였다. 그래서 찾은 곳. 서강의 물도리 동(물이 감싸고 돌아나가는 지형의 땅)인 청령포다.

청령포 송림을 아직 가보지 못한 분들.

대한민국의 아름다움을 언급할 자격이 없다. 20∼30m를 훌쩍 넘기는 늠름한 장송도 그렇지만 그 빽빽한 장송으로 이룬 숲 안에 고이 간직된 그늘마당 또한 기막히다. 게다가 숲가로는 이 숲을 동그랗게 감싸며 초록의 강물까지 흐르니 별 세상이 따로 없다.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천년의 숲’으로 지정된 곳이다.

녹음(綠陰) 짙은 청령포. 그 숲 그늘이야 말로 그 땅에 담긴 음기의 발산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리고 그 짙고도 짙은 음기 때문에 어린 단종 임금의 유배지로 이곳이 선정됐다. 그렇다. 햇볕에 마음껏 노출되는 이에게 그늘은 도움이지만 햇볕을 빼앗긴 이에게 그늘은 그 자체로 무덤이다.》

청령포 숲 맴도는 단종의 넋 하얀 벚꽃으로 피었어라

올해는 단종 임금(1441∼1457)이 영월 관풍헌에서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고 승하한 지 551년 되는 해다. 그리고 내일(26일)은 승하 후 지난해에 최초로 거행한 단종 임금의 국장을 처음으로 재현하는 날이다. 단종은 조선의 스물일곱 분 임금 가운데 유일하게 승하 직후 국장의 예를 받지 못했던 불행한 군주. 그러나 올해부터는 ‘국장재현’ 행사로 매년 그 죽음을 위로받는 유일한 왕이 됐다. 단종문화제(25∼27일)가 열리는 단종의 땅, 영월로 여행을 떠난다.

○영월 주민들 수호신으로 받들어

영월 주민의 단종 사랑은 특별하다. 먼 길 떠나기 전 혹은 집안 대소사가 걱정스러울 때 장릉(단종 임금을 모신 왕릉)을 찾는다. 단종을 영월의 수호신처럼 받든다. 매년 이맘쯤 열리는 단종문화제는 그런 영월의 단종 사랑을 보여주는 창이다.

숨진 단종이 왕위에 복위된 때는 승하 241년 후인 1698년(숙종 24년). 조선임금 중 유일하게 왕릉에서 제사를 모시는 ‘단종제향’도 그때 시작됐다. 그러나 제향은 공식행사여서 후손이 아닌 주민은 참가 자격이 없다. 그래서 주민들은 단종문화제(1967년)를 만들어 제향일에 즈음해 관련 행사를 치러왔다. 그 하이라이트가 지난해 치른 ‘국장’이었다.

승하한 지 550년 만에 치른 단종의 국장. 올 국장은 이렇게 재현된다. 25일 견전의(영면을 기원하는 의식)를 필두로 26일에는 관풍헌을 출발해 장릉까지 이어지는 발인행렬에 이어 재궁(관)을 묻기 전에 드리는 천전의, 신주를 모시고 동강둔치까지 돌아오는 반우행렬이 펼쳐진다. 발인행렬에는 군민과 학생 등 1000여명이 참가한다.

생후 사흘 만에 어머니를 잃고 세종의 후궁 혜빈 양씨의 품에서 커 열한 살(1452년)에 왕위(조선 6대 왕)에 오른 단종. 그러나 재위 3년 1개월 23일 만에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상왕으로 물러난다. 이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청령포로 유배돼 끝내 사약을 받고 숨진다. 그리고 시신은 버려졌다가 한 의인에 의해 몰래 매장된다. 이런 슬픈 역사를 고스란히 떠안고 살아온 영월사람들. 그들에게 단종은 한 식구다.

그런 영월인지라 지금도 곳곳에는 단종의 모습이 남아 있다. 지명을 보자. 청령포로 향한 유배 길. 코스는 원주∼신림∼주천이다. 신림 황둔을 지나 오르던 한 고개에서 임금은 금부도사 왕방연에게 묻는다. 무슨 고개가 이리도 험한가라고. 그러자 왕방연은 이렇게 답한다. “노산군께서 오르시니 이제부터는 군등치(君登峙)라고 하옵지요.” 군등치를 내려서면 신천리. 이곳은 당시 주민들이 몰려나와 대성통곡을 했던 곳인데 ‘명라곡(鳴羅谷)’은 거기서 유래됐다.

신천을 지나 남면 북쌍리로 가는 도중에 배일치(拜日峙)라는 고개가 있다. 단종이 땅에 엎드려 서산에 지는 해를 향해 절을 했다는 곳이다. 소나기재는 단종제향이 시작된 후 제물을 나르던 사람들이 단종의 원망처럼 퍼붓던 소나기를 오를 때마다 만났던 곳이라 해서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뒤로는 첩첩산중, 앞에는 강물 막혀

保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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