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홍규(33) 씨의 입심이 대단하다. 새 소설집 ‘봉섭이 가라사대’에서 그는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도 확실하게 자리를 구분 짓는 입담으로 독자들을 홀린다.
작가는 사람이 동물이 돼버리는, 언뜻 보기에 환상적이지만 들여다보면 비루한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환상적인 설정으로 인간을 탐구하는 실험은 앞선 소설집 ‘사람의 신화’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봉섭이 가라사대’의 기교는 능란해졌다. 작가는 약자들의 황폐한 삶을 놀랍도록 세련된 방식으로 전달한다.
표제작 ‘봉섭이 가라사대’에서 봉섭은 아버지 응삼의 소를 훔쳐 달아났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집안의 골칫거리. 그 봉섭의 눈에 비친 아버지 응삼은 소싸움꾼 겸 소장수로, 평생을 소와 함께 한 나머지 얼굴마저 소를 닮아버렸다. 평생을 소처럼 순박하게 살아왔지만 약육강식의 사회 앞에서 무력한 응삼의 모습을 작가는 판타지처럼 그려낸다.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하는 농민집회에서 응삼이 소처럼 되새김질하는 부분이 그렇다. ‘순경이 어깨를 떠밀었는데, 그 순간 응삼이 새우처럼 허리를 숙이며 토악질을 했다. 응삼이의 입가로 주르륵 멀건 타액이 흘러나오다가 후루룩 빨려들어갔다. 그러더니 그걸 다시 우걱우걱 씹어 먹는 게 아닌가.’ 지극히 비현실적인 이 장면은 그러나 역설적으로 현실의 가혹함을 드러낸다.
또한 작가는 ‘뱀이 눈을 뜬다’의 주인공 ‘그’를 ‘몸에 뱀이 숨어 사는 사람’으로 설정한다. 보일러공으로 일하다 갑작스럽게 해고당하고 연인 경숙마저 그를 떠나자 그의 몸속 뱀은 꿈틀대기 시작한다. 순하기만 한 그에게 가해지는 세상의 폭력은 이렇게 잔혹하다.
작가는 ‘동물처럼 돼버리는 인간’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없는 곳임을 보여준다. 그것은 거꾸로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일러준다.
평론가 김미정 씨의 말처럼 “우리 시대의 ‘인간’은 (손홍규 씨의 소설에서처럼) 역설적으로만 발견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가 “모든 영광은 스스로 아름다워지려 애쓰는 ‘사람들’에게 돌려야 한다”고 밝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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