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마마’ 이혜정, 통 큰 엄마 손맛 요리…건강가족 입맛 조리

  • 입력 2008년 4월 26일 08시 47분


“나를 담을 수 있는 음식 하고 싶어… 배짱 맘에 든다며 가르쳐 주시더라”

‘빅마마’라는 애칭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요리연구가 겸 요리선생 이혜정(52)씨.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맛깔스럽게 요리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2004년 푸드채널(현 올리브)에서 방영된 ‘빅마마의 오픈키친’으로 스타 요리 선생이 된 그는 이후 KBS ‘행복한 오후’와 EBS ‘최고의 요리비결’ 등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달에는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빅마마의 한국 음식’(가제) 출간을 시작으로 일본 활동도 선언했다. 푸근한 요리에 맛, 그 이상을 담고 있는 그는 과연 어떻게 현재 위치까지 왔을까. 그의 인생이 궁금했다.

○ 나를 담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고 싶다

그는 유한킴벌리 이종대 전 회장의 딸이다. 집에는 일주일에 두세 차례 아버지 손님이 집을 찾았고, 어머니는 이 때마다 그에게 김치를 썰고, 음식 만드는 것을 돕게 했다.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음식은 사 먹는 게 아니라 만들어 먹는 거라는 생각을 가진 그는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 입학시험을 치른 뒤 무작정 스위스로 갔다가 부모에게 잡혀오기도 했다. 하지만 열망은 결코 잠재울 수 없는 법.

1974년 대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때 신문에서 보고 조선호텔에 사무실을 갖고 있던 조안 리를 찾아가 요리를 배우게 해달라고 얘기했다. 당돌함 뒤에 숨어있는 열정을 알아차린 조안 리는 차가운 음식을 만드는 ‘콜드 키친’ 부서로 데려가 미스터 켈러를 소개했고, 그는 이씨의 첫 요리 스승이 됐다.

“요리를 너무 하고 싶은데 나를 담을 수 있는 음식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배짱이 맘에 든다고 하시면서 가르쳐 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 아이를 위한 음식을 만들다

30여년도 넘은 일이지만 날짜까지 잊지 못한다.

7월3일부터 8월3일까지 매일 700개의 삶은 계란을 깠다. 하루 종일 계란을 까니 손에서 피가 났지만 마냥 즐거웠다. 좋아하는 일을 시작했다는 뿌듯함 때문이다.

한 달이 지나고, 오드볼(입맛을 돋우는 전채 요리)을 첫 요리로 배웠다. 이렇게 2년 간 기본적인 요리를 습득했다.

부모의 뜻대로 결혼해 평범한 주부가 된 그에게 요리를 다시 생각하게 해 준 것은 아들이다. 결혼 이듬해인 1980년 얻은 첫 아이의 심장에 작은 구멍이 있었고, 병원에선 너무 어리니 영양 상태를 보고 1년 뒤 수술 여부를 결정하자고 한 것.

“심장병에 좋은 음식을 찾기 위해 남산 국립도서관을 뒤졌고, 영양에 대해 공부하면서 아이에게 먹이는 것에 온 신경을 기울였어요. 이유식이 중요하다고 믿고 치즈와 빵을 갈아 이유식을 했고, 제철에 나는 채소를 시장에서 사다 갈아 먹였어요. 먹지 않는 게 있으면 잘 먹는 것과 섞여 먹었죠.”

1년 뒤, 병원의 답은? 아이가 건강해져서 수술이 필요 없다는 거다.

○ 이효리가 부럽지 않다

남편 고민환씨(영남의대 교수) 직장을 따라 대구로 내려간 그는 1993년 대구에서 뜻하지 않게 요리 선생이 됐다. 우연히 대구 MBC ‘테마가 있는 아침’이란 프로그램의 요리 코너에 대타로 출연했는데 이게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

구연동화를 하듯 편안하게 요리를 설명하는 그만의 스타일은 금새 대구 아줌마들 사이에서 회자됐고, 엄마들이 집으로 요리를 배우러 오면서 일주일 만에 10팀 100명이 모였다.

첫 월급으로 350만원을 벌었고, 이후 1년 만에 강습소를 따로 내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 하루 8클래스 강의를 했다.

“대구에서 이효리가 부럽지 않았어요. 주부의 로망이었죠.”

돈을 억수같이 벌던 그는 1997년 공부에 대한 갈망으로 이탈리아의 2년제 요리학교인 ICIF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서양 음식을 섭렵한 그는 ‘빅마마’라는 닉네임도 얻었다.

이탈리아는 정해진 양대로 요리하는데, 음식을 정량화하지 말자는 그의 주장에 세르지오느라는 이름의 선생이 ‘빅마마’라는 애칭을 붙여준 것. 이탈리아에서 빅마마는 마피아 보스의 아내라는 뜻으로 음식을 푸짐하게 준단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날, 그는 경기도 과천에 새로운 작업실 오픈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보다 더 유명해지기보다는 어머니가 물러준 이 터에 요리 아카데미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비치는 빅마마. 그의 얼굴에는 ‘희망’이 보였다.

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빅마마의 아이를 위한 요리]엄마가 만든 소시지 “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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