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쟁이라고 알지? 그런데 그 이유에 보르도 와인이 있었다는 거 알아?”
“무슨 소리야. 그건 땅 때문에 벌어진 거 아니었어?”
“12세기 유럽에는 윌리엄 10세라는 사람이 있었어. 그는 비록 공작 신분이었지만 그가 소유한 아키텐 공국은 프랑스 왕국 영토의 세배가 넘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지. 그에게는 엘레아노르라는 딸이 있는데 15세 때 프랑스 국왕 루이 7세와 정략결혼을 시켰다가 이혼해. 그녀는 이후 영국 국왕 헨리 2세와 결혼하지.”
“프랑스 왕비에 이어 영국 왕비가 된 거네.”
“그렇지. 그런데 여기서 바로 문제가 발생해. 당시 결혼 관습은 신부의 재산을 모두 결혼지참금으로 가져가는 건데, 이로 인해 엘레아노르의 전 재산은 영국으로 넘어갔고, 아키텐 공국에 속한 보르도도 자연스럽게 영국 소유가 됐지.”
“아하! 그래서 이 땅을 찾으려고 100년 전쟁이 일어났다는 말이구나.”
“그렇지. 그런데 재미있게도 당시 영국 사람들은 새 왕비를 엄청 반겼어. 나중에 벌어질 참극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말이야. 그 이유가 뭔지 알아. 바로 마실 물 때문이야. 영국은 심각한 지하수 오염으로 식수가 늘 부족했고, 보르도, 스페인, 포르투갈 등에서 와인을 수입해 물 대신 마셨는데, 보르도가 영국령이 되니까 자기네 와인처럼 마실 수 있어서였지. 보르도 와인은 당연히 관세가 폐지되고, 가격이 싸지면서, 소비가 늘어났겠지. 보르도 와인 수출은 런던항 와인 하역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됐고 말이야. ”
신기했다.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와인이 있었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런데 보르도 와인에 밀린 스페인과 포르투갈 와인은 어떻게 됐을까. 김은정의 설명을 듣고 나니 세상에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보통 와인으로는 경쟁이 안 되자 두 나라는 알코올 도수를 높인 주정강화 와인을 만들었고, 이게 바로 식전주와 식후주로 마시는 셰리와 포트 와인이란다. 한 여인의 결혼이 와인 시장의 판도를 이렇게 바꿔놓을 줄 누가 알았을까. 하긴 이런 일이 하나씩 쌓여 만들어진 게 역사 아니던가.
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KISA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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