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서 캐낸 생명의 온기… 원로 조각가 전뢰진 7년만의 개인전

  • 입력 2008년 5월 6일 03시 00분


돌도 자신을 아끼는 ‘주인’의 성품을 닮는 것일까. 원로 조각가 전뢰진(79·홍익대 명예교수·사진)의 돌조각은 한결같이 온화하고 소박하다. 돌고래에 올라탄 소년, 정다운 오누이, 모자상…. 기교와 화려함 대신 포근한 촉감과 훈훈한 온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나무 인형 피노키오에게 제페토 할아버지가 있듯이 그는 차갑고 무심한 돌에 숨결과 영혼을 불어넣는다.

그가 10∼3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청작화랑에서 7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 정과 망치를 사용하는 수작업을 고집하는 그는 요즘도 관악구 신림동 자택의 작업실에 틀어박혀 1년에 5, 6점을 만들어낸다. 유난히 가는 팔목과 살집 없이 깡마른 몸, 고령의 나이에 돌을 만지는 비결이 궁금했다. “스물여섯 살 때부터 평생 해온 일이니 할 수 있는 거죠. 힘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돌에는 결이 있어요. 그 결을 따라 자르는 겁니다.”

화가 지망생이던 그는 우연히 돌과 인연을 맺는다. 홍익대 교수였던 스승의 부탁으로 석공의 작업을 감독하다가 심심풀이 삼아 만든 돌조각이 공모전에서 상을 받고 미국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선물로 보내졌다는 것. 그 뒤 반세기 넘게 손에서 정과 망치를 놓은 적이 없다. “돌을 다루면 마음이 유순해지는 것 같아요. 얼마나 재미있는지 시간 가는 줄 모른다니까….”

28년째 살고 있는 자택의 지하실이 창작의 산실이다. 대낮에도 불을 켜야 하는 어두운 작업실에서 더운 날이나 추운 날이나 돌을 쫀다. 이젠 정의 머리를 보지 않고도 망치로 정확히 내려치는 경지에 이르렀다. 후학들마저 고되고 더딘 돌조각을 외면하지만 그는 어떤 것도 손맛을 따라갈 수 없다고 믿는다.

“기계로 드르륵 마무리한 작품에는 리듬과 생명력, 강약이 없어요. 손으로 한 작품에선 정의 느낌이 살아있어 모조품이 나오기 힘들지요. 고생하는 만큼 기쁨도 큽니다.”

그가 만든 모자상에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부산 태종대에 그의 조각을 설치한 뒤 자살하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는 것. 나이든 사람은 자식 생각에, 젊은이는 부모 생각에 마음을 돌렸다는 것. 덕분에 그의 조각은 ‘생명을 구하는 작품’으로 사랑을 받았다. 02-549-3112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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