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선생님 뵈면 수술 권하려 했는데…”
이명박 대통령 등 각계 인사 조문 줄이어
“글 쓰는 사람들에게 선생님은 ‘큰 바위 얼굴’ 같은 존재이셨습니다. 문학에 대한 치열성과 작품, 그리고 삶 자체가 정확하게 합치한 모습은 후학들에게 빛이요, 지침이었습니다.”(소설가 전상국 씨)
5일 타계한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은 이틀 내내 각계각층의 조문이 끊이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6일 빈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 대통령은 고인의 사위인 김지하 씨 부부와 박완서 장례위원장에게 조의를 전하고 “이번에 뵈면 수술 받으시길 권유하려 했는데…”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손학규 민주당대표,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근태 통합민주당 상임고문,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김기열 원주시장, 진의장 통영시장도 빈소를 찾았다. 정부는 이날 빈소에서 금관문화훈장을 유족에게 전달했다.
6일 낮 빈소를 찾은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는 “개인의 삶을 통해 한국 역사를 생생히 보여주신 분이기에 고인의 타계는 한 시대의 종지부를 찍은 것과 같다”고 말했다. 소설가 신경숙 씨는 “내겐 모국어 같은 분”이라며 “그보다 더 넓은 품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김인환 고려대 교수는 “한 작품 안에 한국 현대사를 다 녹이신 것처럼 작은 것도 끌어안은 넉넉한 분이셨다”며 고인을 회상했다.
소설가 오정희 유시춘 씨, 시인 정현종 오탁번 씨, 김윤식 명지대 석좌교수, 마광수 연세대 교수 등도 빈소에서 애도를 표했다.
박완서 장례위원장, 최유찬 연세대 교수, 정현기 세종대 교수 등은 가족과 함께 전날부터 빈소를 지켰다. 이들은 “한국 문학사에 전무후무한 거봉이면서도 항상 손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형님이자 어머니, 대선배.”(박 위원장) “박경리라는 별은 떨어지지 않고 더욱 찬란하게 빛나겠지만 후배들이 의지할 큰 버팀목이 사라진 셈”(정 교수)이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5일 밤늦게까지 빈소에 모여 회상에 잠긴 문인도 많았다. 조정래 씨도 “홍명희 선생 이후로 끊긴 대하소설의 맥을 이은 민족의 자존심이자 국보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토지문화관에서 ‘보리’ 등을 집필했던 소설가 윤대녕 씨는 “새벽 세 시면 기침 소리를 내며 일어나 후배 문인들을 위해 음식을 손수 짓던 어머니 같은 분”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정몽준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고인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교류가 많으셨다”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조사를 써주셔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인이 나고 자란 경남 통영시 중앙동 문화마당에는 6일 고인을 위한 야외분향소가 설치됐으며 소설 토지의 무대인 경남 하동군도 조문 현수막을 내걸었다. 강원 원주시 토지문학공원 내 분향소에도 많은 이가 조문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